여기 정적의 천년을 관통한 무거운 돌이 있다. 경주 황룡사터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거대한 초석(礎石)은 1400년이 넘는 긴긴 시간 그저 한자리를 지켜왔다. 외로운 적요의 더께를 간직한 이 석물(石物)은 세월의 중첩에 따라 더욱 견고해졌고 무심해졌을 테다. 정명택(53..
“왜 강화도인가요?” 작가 이규홍(52)을 강화도 작업실에서 만나 물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입니다.” 그는 웃으며 명료하게 답했다. 유리의 물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하는 이규홍은 자연의 빛을 작품 주제로 삼는다. 작업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갯벌은 물때에..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고 싶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프랑스에서 온 작가 레미 이스베르그(Rémy Hysbergue·57)를 1월의 추운 겨울날 용문동의 갤러리 끼에서 만났다. 작..
변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근원에 있다. 채성필(52)의 작업 세계에서 모든 것이 흙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흙, 그것은 자연 그 자체의 본질이자 원형으로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잉태되며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만물의 중심에 있는 흙은 ..
미술가에게는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영감의 토양이 된다. 신디정(Cindy Jung·50) 작업 세계에서의 본능적 원천은 깊은 침잠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는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마주하는 내면의 세계를 화면으로 옮기는데, 마치 고요한 우주의 한 조각을 떠다가 ..
단어가 모이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이면 한 페이지를 이룬다. 이들 페이지가 한데 엮이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과정은 조금씩 달라도 그 인생의 여정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엄미금(..
정수(精髓)는 단순함에 있다. 알렉스 카츠(Alex Katz·96)의 회화가 그러하듯이. 카츠는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특유의 조형 언어로 일상과 동시대를 탁월하게 포착해 캔버스에 펼쳐낸다. 작가의 개인전 ‘알렉스 카츠’가 21일까지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Gladst..
이. 목. 하. 입 안에서 사각거리는 듯한 어감의 산뜻한 이름이 창백하고도 파르께한 그의 화면과도 똑 닮았다. 한 번 듣고도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 깊은 이름을 지닌 작가 이목하는 아트씬에 강렬한 족적을 남기며, 지금 이 순간 아트 러버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이머징 아티..
보드랍고 연약하면서 동시에 잘 찢기지 않으며 질긴 양가적 특성을 동시에 지니는 전통 한지 닥종이. 김영희(79)는 이러한 닥종이를 소재로 삼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닥종이 작가다.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인의 표정과 풍습을 정감 있게 표현해 소박한 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