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05 14:10
“흙은 세상의 뿌리… 내 회화는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개인전 ‘원시향’, 근작과 신작 20여 점 선봬
11일부터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변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근원에 있다. 채성필(52)의 작업 세계에서 모든 것이 흙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흙, 그것은 자연 그 자체의 본질이자 원형으로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잉태되며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만물의 중심에 있는 흙은 자연의 섭리를 간직하고 있다.
작가에게 자연은 늘 간구하는 열망의 주제였다. 채성필은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극상생으로써 빚어졌다고 하는 태초의 자연, 이 현묘한 세계를 화판(畫板)에 구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흙에 있음을 깨달았다. 흙은 지난 수많은 세월과 역사를 관통해 온 현장이자 인간의 터전이며, 지리 문화적 특성을 보임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본질적 공통성 또한 아우른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또한 고국과 가족을 향한 볼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가시화하고 화면에 담아낼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이기도 하다. 그가 고향의 흙을 재료로 사용하는 배경이다. 흙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릇이다.
채성필 개인전 ‘Origine: 원시향’이 11일부터 2월 17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 타이틀 ‘원시향’은 작가의 대표 연작과 동명으로, 근원의 향기를 뜻하는 ‘원시향(原始香)’과 멀리서 바라보는 고향이라는 의미의 ‘원시향(遠視鄕)’을 동시에 함의한다. ‘물의 초상’, ‘대지의 몽상’, ‘흙과 달’ 등을 포함해 근작과 신작 20여 점을 내건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작가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냈고 프랑스에서 답변이 왔다.




─흙을 소재로 삼아 자연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이는 선생님의 회화가 대지와 물결을 연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흙을 재료로 삼게 된 계기는요.
흙을 재료로 최초 도입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행길 우연한 기회에 물가의 갈대를 꺾어 진흙을 적셔 스케치북에 드로잉한 것이 그 시작이었죠. 이후 흙에 대한 연구는 계속했고 1999년 ‘경계, 흙으로부터’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됐습니다. 이처럼 흙 그림은 전업 작가로서 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결코 떠날 수 없는 근원이며 이상적인 가치이자 정신성을 상징합니다. 흙은 제게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감상과도 같아요. 그야말로 흙은 인간의 본질과 그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요. 알면 알아갈수록 겸손을 알려주는 자연과 같습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흙이 다르다고들 합니다. 선생님께서 사용하는 흙은 어떤 흙인가요? 여러 흙을 사용해 보셨을 텐데, 작품의 재료로 사용되는 흙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옛 어른들이 개울만 건너도 흙의 성질이 달라진다고들 하시던 게 기억납니다.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국경과 대륙을 넘어온 흙은 그 성격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흙은 단순히 손에 만져지는 물성으로서의 다양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땅, 즉 자연과 삶의 바탕으로써도 그 장소에 따라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죠. 이렇듯 지역별, 나라별, 대륙별 구별되는 특징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간을 초월한 공통성을 띱니다. 본디 흙이란 생성과 회귀의 순환적 공간이며, 모든 존재가 현존할 수 있는 바탕이자, 저처럼 누군가에게는 노스탤지어를 연상하는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옛 어른들이 개울만 건너도 흙의 성질이 달라진다고들 하시던 게 기억납니다.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국경과 대륙을 넘어온 흙은 그 성격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흙은 단순히 손에 만져지는 물성으로서의 다양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땅, 즉 자연과 삶의 바탕으로써도 그 장소에 따라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죠. 이렇듯 지역별, 나라별, 대륙별 구별되는 특징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간을 초월한 공통성을 띱니다. 본디 흙이란 생성과 회귀의 순환적 공간이며, 모든 존재가 현존할 수 있는 바탕이자, 저처럼 누군가에게는 노스탤지어를 연상하는 고향이기도 하니까요.
2015년까지 열린 모든 전시에서는 해당 전시가 열린 나라의 흙을 채집해 안료로 사용했습니다. 이를테면, 2005년 프랑스의 도시 렌(Rennes)에서 유학 후 처음 열린 개인전에서는 이 마을의 흙을 재료로 사용해 제작한 회화를 출품했죠. 그중에서도 만질 때마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흙은 바로 제 고향에서 가져온 흙입니다. 마치 친구와도 같이 한국 흙과의 만남은 시간이 갈수록 그 정감이 더욱 두터워지고 그리움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그림에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오행이 들어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으시죠. 이를테면, ‘목’은 종이, ‘화’는 먹물, ‘토’는 흙, ‘금’은 은분, 그리고 ‘수’는 물자국이 그 역할을 합니다. 작품 세계 속 오행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태초의 자연은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극상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는 이러한 자연을 제 화판에 옮기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가 음양, 오행 등 동양의 자연관을 접할 때면, 무겁고 어렵기만 한 이야기라 생각하기가 쉽지만, 가까이 둘러보면 이 음양과 오행이라는 것이 우리의 도처에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달력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구성된 일주일에서 일, 월은 양과 음을, 화, 수, 목, 금, 토는 오원소 즉, 오행을 상징하죠.
종이나 캔버스는 ‘목(나무)’을, 화면에 고착되며 스며든 흙과 흙에서 온 천연안료는 ‘토(흙)’를, 그리고 흐른 자국을 남기고 기화돼 사라진 물의 흔적은 ‘수(물)’를 상징하죠. 또 작업에 늘 사용하는 먹물은 불에 의해 태워진 나무의 그을음을 모아 만들어졌기에 ‘화(불)’를 대표하고, 진주의 은분을 화면 전체에 사용함으로써 상징적 의미로서의 ‘금(금속)’을 차용했습니다. 이렇듯 직간접적으로 사용된 오행의 원소들이 ‘양(陽)’이자 행위의 주체인 제 자신과 ‘음(陰)’을 상징하는 캔버스 이 둘이 조화를 이루고 또 상극상생하며 하나의 창작물, 즉 회화로 태어나는 것이죠. 비록 창조가 아닌 창작이나, 화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모방되지 않은 또 다른 하나의 자연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화판이란 덩어리 자체가 근원의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요.
─선생님의 예술 세계에서 자연은 가장 주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화면 속의 오행 또한 태고의 자연의 생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듯이요. 왜 하필 자연인지, 예술 세계에서 자연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해 왔죠. 특히 동양의 미술에서 자연은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요한 갈래 중 하나고요. 저는 동시대 미술가로서, 수천 년을 이어 온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현대 미술의 개념과 시각으로써 풀어내고자 합니다. 현대 미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도 창작이라고 믿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해 왔죠. 특히 동양의 미술에서 자연은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요한 갈래 중 하나고요. 저는 동시대 미술가로서, 수천 년을 이어 온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현대 미술의 개념과 시각으로써 풀어내고자 합니다. 현대 미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도 창작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늘 자연이 궁금했습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완성하는 구성 원소들은 무엇일까. 그 구성 원소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근형상’ 혹은 ‘근원’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 런지에 대한 궁금증과 질문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에 현대 미술에서의 독창성이 모방될 수 없는 본질, 즉 오행이라는 원소가 만든 모방되지 않은 자연의 원래 모습에서 오는 것이라고 깨달았어요. 저는 단순히 자연의 외형을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연을 빚어낸 근원소들이 화판 위에 모여 만들어내는 자연의 뿌리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자연의 원형을 토대로 화면 위에 다양한 시도를 이어 오셨습니다. 선생님의 회화 앞에 서면 흡사 자연을 마주한 듯 압도되는 기분이 들기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감상을 받기도 합니다.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조망하면 자연의 여러 풍광을 발견하죠. 땅에 고인 물이 넘쳐흐르면, 이는 강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을 남기고 흙을 가르며 세차게 흐르잖아요. 제 작업에서도 비슷한 작용이 벌어집니다. 흙과 물이 만나 중력에 의한 흐름의 흔적을 남기는데, 사실 이는 작업의 기교나 테크닉이기 이전에 자연의 현상입니다. 결국 오행이 상극상생하며 화판 위에서 태초의 자연이 생겨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조성하고 조율하는 것이 바로 제 몫인 셈이죠. 그렇기에 이렇게 빚어진 화면 속의 자연이, 자연을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녹색과 청색, 수려한 황금색 등 다채로운 색이 화면에 펼쳐집니다. 이들 컬러는 각각 어떠한 의미인지요.
어떤 색이든 근원은 흙이라는 동일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흙에서 얻은 천연안료들이기 때문이죠. 저는 한 화면에 동시에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고 단색으로만 드러냅니다. 이는 수묵 정신에서 기인했습니다. 동양에서 오랜 시간 먹이라는 재료가 널리 쓰인 데에는 먹이 지닌 고유의 정신성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은 ‘현(玄)’이라고 해 모든 색을 포용하는 색으로서, 본질을 의미하는데, 이는 수묵의 정신과 궤를 같이합니다.
어떤 색이든 근원은 흙이라는 동일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흙에서 얻은 천연안료들이기 때문이죠. 저는 한 화면에 동시에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고 단색으로만 드러냅니다. 이는 수묵 정신에서 기인했습니다. 동양에서 오랜 시간 먹이라는 재료가 널리 쓰인 데에는 먹이 지닌 고유의 정신성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은 ‘현(玄)’이라고 해 모든 색을 포용하는 색으로서, 본질을 의미하는데, 이는 수묵의 정신과 궤를 같이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을 꼽자면 파랑입니다. 이는 땅을 둘러싼 바다이자 대지의 역사를 지켜본 하늘이며, 내 몸에 아픔으로 든 멍이기도, 치유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상을 꿈꾸는 삶의 색이기도 해요. 푸른빛의 회화는 ‘물의 초상’이란 명제를 지니는데, 물은 땅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물 또한 땅이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1월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2024년의 첫 개인전이 개최됩니다. 이번 전시에 내걸릴 작품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흙과 달’이라는 구상성을 지닌 항아리 그림을 시작으로 대표 연작 ‘물의 초상’, ‘익명의 땅’, ‘대지의 몽상’ 등을 내보입니다. ‘흙과 달’은 달리 부르자면 그리움입니다. 어느 깊은 밤, 타국의 작업실 창을 통해 바라본 보름달이 흙을 만질 때처럼 간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고국이 그리웠습니다. 흙과 달은 분명 먼 거리를 두고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인데, 어째서인지 제 마음속에서만큼은 둘은 하나가 됐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언제라도 돌아갈 수도 없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간절하고 짙은 것일 테죠. 그러한 커다란 그리움을 담아 흙으로써 항아리를 닮은 형상의 달을 그렸습니다.
청색을 띤 ‘물의 초상’ 시리즈는 이름 그대로 물을 표현한 회화입니다. 특히 ‘물의 초상’은 ‘익명의 땅’과 ‘대지의 몽상’과도 연결되는 중추적인 연작입니다. 물은 흙의 기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흙이라는 대지의 커다란 그릇에 담긴 물이 지구의 중력 등에 의해 끊임없이 출렁이는 것이 바다의 파도잖아요. 이렇듯 물은 땅의 움직임과 존재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흙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물만한 것이 없는 이유죠.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