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하나 질긴 ‘닥종이’와 같은 우리네 인생… 김영희 ‘닥종이 예술 세계’ 회고전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3.07.21 17:44

한국서 7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현대적 감각 가미한 미공개 모노톤 신작 등 조각과 회화 40여 점
7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김영희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전경.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영희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전경.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트조선
 
보드랍고 연약하면서 동시에 잘 찢기지 않으며 질긴 양가적 특성을 동시에 지니는 전통 한지 닥종이. 김영희(79)는 이러한 닥종이를 소재로 삼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닥종이 작가다.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인의 표정과 풍습을 정감 있게 표현해 소박한 멋을 지닌 그의 조각은 한국을 비롯해 유럽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닥종이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작가는 우리네의 인생이 연약하면서 견고한 닥종이와도 같다고 말한다. 닥종이를 수없이 찢고 찢어 이를 겹겹이 붙이는 지난한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이 완성되는데, 이러한 모습이 시간의 궤적이 쌓여 하나를 이루는 인간의 삶과 같다는 것이다. 
 
독일 뮌헨에서 생활하며 작업하는 그가 한국에서 7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다. 김영희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Das Leben ist schön)’가 27일부터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기존의 정겨운 닥종이 인형 조각은 물론, 와인잔, 와인병, 치즈 등과 같은 실생활 속 오브제를 소재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모노톤 색상으로 표현한 최신작이 함께 내걸리는 자리다. 올해 산수(傘壽)를 맞는 그의 예술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는 기회로, 40점의 닥종이 조각과 5점의 콜라주 회화로 꾸려진다. 
 
재독 예술가, 다섯 아이의 엄마 등 김영희를 따라다니던 다이내믹한 수식어를 제하고 오롯이 작가 김영희를 조망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속에서 꽃피운 예술 세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작가를 광화문에서 만났다. 
 
김영희 작가가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시는 7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바다 물결 헤치며. /아트조선
겨울밤의 추억(1998). /아트조선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가 7월 27일부터 한 달 가까이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됩니다. 이번 전시는 올해 산수를 맞이하신 선생님의 팔순 잔치와도 같은 자리인데, 소회가 남다르실 것으로 짐작됩니다. 
 
작가로서 너무나 큰 영광이죠. 누가 제 팔순 잔치를 이렇게 성대하게 열어주겠습니까.(웃음) 우리 아이들, 즉 제 작품들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여는 것이니 더더욱 뜻깊은 전시죠. 2016년 조선일보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한국에서는 7년 만에 여는 전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시명도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말 그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거죠. 물론 이를 바꿔 생각하면 아름다운 만큼 힘들고 어렵기도 하다는 뜻일 테고요. 그러기에 기왕지사 행복하고 즐겁게 살자는 것이 제 모토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청와대 어귀까지 쭉 산책하는데, 주변 자연 풍광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삶이란 이토록 눈부신 것이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닥종이를 수없이 오리고 겹겹이 붙이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선생님의 작품 그 자체가 추억과 시간이 층층이 쌓이며 이뤄지는 우리의 인생과도 같은 듯합니다. 닥종이 조각의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맞아요. 제 조각이 바로 우리네의 삶과도 같아요. 공력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 없고 그만한 시간을 쏟아야만 끝낼 수 있거든요. 저는 밑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따로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제작하는 스타일인데, 설계도 없이 순간의 감각으로 닥종이를 붙여 나가요. 미리 계획하고 작업을 시작하면 거기에 매여 제 감성대로 가기 힘들더라고요. 한 번 머릿속에 상(像)이 잡힐 때까지는 변주도 줬다가 바꿨다가 하면서 유연하게 가죠. 작업이란 오롯이 저 혼자 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더욱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 혼자 조용히 묵묵히 작업에 임하며 좋은 기억과 행복한 시간이 닥종이 조각에 첩첩이 쌓이는 기분이에요.
 
겨울 밤 와인과 치즈. /아트조선
겨울 밤. /아트조선
거위와 나. /아트조선
 
─이번 전시에서 모노톤의 최신작을 선보이십니다. 와인잔과 와인병, 치즈 등 실생활 속 오브제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모노톤으로 표현하셨는데요. 기존의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인의 표정과 풍습을 담은 조각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난 변화랄까요. 실제 저의 일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이기도 하고요. 미술가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모르게 점차 실생활 속 오브제에 눈길이 갔던 것 같아요. 기존 닥종이 인형들은 정감 있는 여러 색을 입고 있었다면, 이들 신작은 대체로 하얀색을 띱니다. 흰색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기도 하죠.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며 마음을 비우는 미덕을 상징하는 색이니까요. 
 
─작업하시는 것 외에도 정원을 가꾸는 일에 큰 취미가 있으세요. 조경(造景)의 어떠한 점에 매료되셨으며,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궁금합니다. 
 
독일의 집에는 큰 정원이 있어요. 제가 어린아이들에 영감을 받아 지금껏 닥종이 조각을 이어왔잖아요. 아이들을 보면 다 꽃 같고 천사 같고 그래요. 이제는 자식 다 키워 보냈지만 꽃에 둘러싸여 지내며 꽃들이 내 자식인 것처럼, 어린아이들인 것처럼 지내는 거죠. 꽃에서 아이들을 발견하고 다시 영감을 받아 이를 닥종이 조각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어요. 그러기에 제게 정원은 아주 중요한 영감의 원천인 셈이죠. 또 꽃이 우리 한지와도 비슷하다는 점을 아시나요? 꽃을 자세히 보면 아주 가느다랗고 섬세한 줄기들이 모여 이뤄져 있는데, 마치 이 모습이 한지의 섬유처럼 보인답니다. 
 
김영희 작가가 독일 자택 정원에서 조경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 제공
김영희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 전경.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푸른 편지. /아트조선
 
─방혜성 태평양학원 이사님께서 이번 전시를 위한 서문을 직접 써 주실 만큼 두 분께서는 굉장히 각별한 사이입니다. 어떻게 맺게 된 인연인지요.
 
참으로 소중한 제 친구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좋은 그런 친구요. 20여 년 전쯤 조선일보미술관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만났습니다. 돌아가신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님께서 당시 제 작품을 눈여겨봐 주셨는데, 어느 날에는 제게 따님을 소개해 주시더군요. 저보다 훨씬 젊지만 겸손하고 고운 성품에 반했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지금까지 방 이사님과 제 우정이 이어져 오고 있어요. 제 작품을 구매해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작업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언제나 응원해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 서문도 제가 부탁드린 거예요. 저는 미술평론가가 아닌, 한 사람이 서문을 써주길 바랐습니다. 평론의 논리가 아닌, 한 사람의 솔직한 심상의 글 말예요. 서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방우영 회장님께서 저를 두고 ‘영화배우 같다’라고 방 이사님께 말씀하셨다는 회고가 나옵니다. 이 내용을 글에 써도 되겠냐고 방 이사님께서 물어보기에 제가 꼭 넣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답니다.(웃음)
 
─이번 전시에는 닥종이 조각과 회화가 함께 내걸립니다. 이들 출품작 중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있다면 꼽아주십시오.
 
한 점만 꼽으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식들 중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것과 같거든요.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각각의 조각과 회화가 서로 다른 개성과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날의 전시회(1997). /아트조선
여인상. /아트조선
 
─전시 개막 후, 주말마다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관객과 만날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화실에만 있으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제 전시를 통해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과 마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제 작업 세계에 대해 직접 들으실 수 있는 기회이오니 많이들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최고의 예술 작품입니다. 소설을 짓더라도 그렇게 못 써요. 어떠한 영화보다도, 어떠한 오페라보다도 더욱 진하고 강렬한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문의 (02)736-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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