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26 17:46
디지털 요소 결합한 회화 작품 30여 점
아시아 첫 개인전 ‘abstraites, givrées: 서리 내린 추상’
2월 24일까지 용문동 갤러리 끼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고 싶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프랑스에서 온 작가 레미 이스베르그(Rémy Hysbergue·57)를 1월의 추운 겨울날 용문동의 갤러리 끼에서 만났다. 작가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과 태도로 그저 담담하게 앉아 주변 사람을 집중시켰다.
이스베르그는 한국 첫 개인전 ‘abstraites, givrées: 서리 내린 추상’을 2월 24일까지 용문동 갤러리 끼에서 가진다. 전시장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 자연광과 조화롭게 걸린 여러 작품은 관람객의 시선을 뺏는다. 언뜻 보면 입체적이다가도, 가까이 다가가면 평면적으로 보인다. 전시장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옮겨지는 시선에 따라 작품은 은은하게 빛난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 처음으로 이스베르그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며, 수년간 작업해 온 ‘À Découvert’ 시리즈 중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작업한 근작 30여 점이 내걸린다. ‘À Découvert’ 시리즈는 네온과 같은 독특한 색을 사용해 잘못 찍힌 사진이나 디지털 화면의 노이즈를 표현한다. 또한 작가는 회화의 전통적인 소재인 캔버스 대신 벨벳, 새틴과 같은 반들거리는 속성의 직물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이러한 소재는 고유한 질감과 깊이를 부여하고, 기존의 캔버스가 구현할 수 없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다음은 작가와의 문답.



─아시아 첫 전시를 한국에서 가지게 됐는데,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디를 가나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것 역시 나에게는 재미있는 점이었다. 특히 눈여겨본 점은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건물과 단순한 공간 구성의 조화였다. 나는 동양화에도 관심이 많은데, 동양화는 여백이 많다. 유럽에서는 여백을 그저 빈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양화에서 여백은 하나의 공간으로 작용하는 느낌이 있다. 한국 도시의 복잡함과 단순함의 조화가 인상깊었다.
─벨벳의 사용이 돋보인다. 윤기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업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왜 벨벳인가?
나는 오히려 작업하기 힘든 재료를 선호한다. 벨벳도 작품의 재료로 쓰기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껍고, 기존의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그런 어려움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좋다. 계속된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서 예술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히려 작업하기 힘든 재료를 선호한다. 벨벳도 작품의 재료로 쓰기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껍고, 기존의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그런 어려움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좋다. 계속된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서 예술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춥다. 마침 전시 제목도 ‘서리 내린 추상’이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전시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제목을 지을 때 유머러스하거나 모순적인 요소를 고려한다. 잘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섞는 것도 좋아한다. 이번 전시 제목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추상이 얼어붙었다는 뜻이다. 나는 추상 그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한계란 어디인가 실험한다. 작품 제목도 일맥상통한다. 추상을 얼리면? 그것을 과연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관람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또, 빛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봐서인지 작품이 빛나는 것도 같다(웃음). 빛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현대미술에서는 빛의 중요성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빛이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 연구한다. 빛은 회화로 하여금 설득력을 갖게 한다. 사진에는 거짓이 없다. 사실 그 자체다. 빛이 있는 그대로 담기기 때문이다. 회화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빛이 필수적이다. 빛은 화면 안에서 밸런스를 부여한다.
현대미술에서는 빛의 중요성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빛이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 연구한다. 빛은 회화로 하여금 설득력을 갖게 한다. 사진에는 거짓이 없다. 사실 그 자체다. 빛이 있는 그대로 담기기 때문이다. 회화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빛이 필수적이다. 빛은 화면 안에서 밸런스를 부여한다.


─작품을 보면 디지털 이미지나 노이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회화를 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을 그림에 넣고자 한다. 현재는 디지털 시대다. ‘A 40921’(2021)은 빛이 과노출돼 하얗게 타버린 사진을 표현한 작품이다. 꼭 아름답기만 한 것을 그릴 필요는 없다. 현대인으로 살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작품 안에 담아낼 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보고 느끼는 디지털 미디어를 작품에 담는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사실 메시지보다는 디지털 미디어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생성 과정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가 갖는 연관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도 작품의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사실 메시지보다는 디지털 미디어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생성 과정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가 갖는 연관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도 작품의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없다. 미리 구상을 하고 작업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해 즉흥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그려낸다. 그것은 뚜렷한 형태도 의미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이미지가 흘러넘치고 있는데, 또 어떤 의미를 가득 담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동양화 기법처럼 비워두는 것에 가깝다. 관람객은 이로 인해 자유롭게 자신만의 상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 나이, 문화, 국적 같은 많은 사회적 배경을 넘어서서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없다. 미리 구상을 하고 작업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해 즉흥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그려낸다. 그것은 뚜렷한 형태도 의미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이미지가 흘러넘치고 있는데, 또 어떤 의미를 가득 담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동양화 기법처럼 비워두는 것에 가깝다. 관람객은 이로 인해 자유롭게 자신만의 상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 나이, 문화, 국적 같은 많은 사회적 배경을 넘어서서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