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프] '그리기' 탈피한 창의적 표현 두각… 추상화 무관심은 아쉬워

입력 : 2009.08.04 05:35

아시아프 1부를 돌아보고
협찬: 하나금융그룹, LG, SK energy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화가 렘브란트와 베르메르가 살았던 17세기 네덜란드에는 그림 걸기가 대유행이었다. 한 예로 델프트에서는 시민 중 3분의 2가 실내를 미술품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택을 작은 화랑으로 꾸미는 것이 자랑이었을 정도다. 귀족이나 부유층이 아니라 평범한 상인과 서민이 그림을 사는 주 고객이었다. 그런 폭넓은 미술 향유가 변방에 위치한 네덜란드를 유럽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세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날을 맞게 될까. 《2009 아시아프》를 통해 우리 생활 속에 미술문화가 정착되고, 아울러 '제2의 김환기' '제2의 박수근'을 길러내는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옛 기무사 건물을 임시 개조한 아시아프 전시장에 들어서면 무거운 눈꺼풀을 확 뜨게 하는 청량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아준다. 두 차례로 나뉘어 열리는 전시의 1부에는 높은 경쟁을 뚫고 올라온 777명의 출품작 2550여 점 중 절반이 출품되었다. 아시아 7개국에서 온 60명의 작품까지 '덤'으로 주어진다. 웬만한 전람회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규모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이 비슷하기는커녕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더욱 놀랍다. 소소한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친 것, 매끈한 조형 구사력, 재치 있는 아이디어 등이 볼만하다.

종래의 그리기 위주에서 벗어나 만들기·꾸미기·붙이기 등 다양한 기법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구김살 없는 표현으로 그들의 번쩍이는 창의력을 뽐내었다. 작품 소재는 거창한 관념이나 이념적 문제들이 아니라 흔히 접하는 마을·거리·일상·장신구·정물·실내풍경 등을 다루거나 자아의 내면에 시점을 맞추었다. 떠들썩한 구호 없이 일상에서 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를 테마로 설정한 것이 호소력을 더해준다.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온 세대답게 애니메이션, 캐릭터, 팝스타의 아이콘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으며 극(極)사실 회화도 젊은 세대에게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다. 무려 아홉 번을 찌고 아홉 번을 말려 만든다는 '달관의 숙지황(熟地黃)'처럼 자신의 조형세계를 잘 가다듬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추상회화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화의 맏형'이랄 수 있는 수묵화도 퇴조한 반면 채색화가 확산일로에 있는 등 쏠림 현상이 현저하다는 것이다. 깊은 사색이 요구되는 작업을 기피하고 표피적인 데에 집중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은 "젊음이란 장밋빛,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식,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고 했다. 출품자들이 젊었기에 좋았던 것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더 빛나 보였다. 내일의 한국미술을 짊어질 젊은 미술인들에게 힘찬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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