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7.30 02:08
내가 본 아시아프 김병종(화가·서울대 미대 교수)
협찬 : 하나금융그룹, LG, SK energy

옛 기무사 건물의 '2009 아시아프' 전시장.
고궁의 담장 너머로 늙은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고즈넉한 이곳은 그러나 7월의 태양과 다투듯 난데없는 젊은 열기들로 후끈하다. 한국을 포함,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800명에 가까운 미술가들의 작품이 토해내는 열기로 유서 깊은 이 거리는 유독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으로 쓰였던 방들은 작품들로 빼곡한데, 그 다양한 작품의 숲 사이를 걷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가까운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과 함께 핏자국과 발소리들이 어지럽게 뒤엉켰던 역사의 현장은 이제 재기발랄한 젊은 미술인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나를 좀 봐달라'고, '여기를 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작품 사이 사이로 들려 오는 일본어며 영어와 중국어를 들으며, 나는 하나의 역사가 닫히고 하나의 역사가 새로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고궁의 담장 너머로 늙은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고즈넉한 이곳은 그러나 7월의 태양과 다투듯 난데없는 젊은 열기들로 후끈하다. 한국을 포함,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800명에 가까운 미술가들의 작품이 토해내는 열기로 유서 깊은 이 거리는 유독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으로 쓰였던 방들은 작품들로 빼곡한데, 그 다양한 작품의 숲 사이를 걷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가까운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과 함께 핏자국과 발소리들이 어지럽게 뒤엉켰던 역사의 현장은 이제 재기발랄한 젊은 미술인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나를 좀 봐달라'고, '여기를 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작품 사이 사이로 들려 오는 일본어며 영어와 중국어를 들으며, 나는 하나의 역사가 닫히고 하나의 역사가 새로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이곳이 장차 중국의 '798'(베이징 다산쯔의 예술특구) 같은 청년 미술의 메카가 될 것 같은 예감도 갖게 된다. 중국이 젊은 미술가들을 전면에 내세워 거대 중국 자본의 출현을 예고했듯이 이제 한국에서도 아시아프의 청년 미술가들을 통해 아시아의 결속과 한국의 힘을 보일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3개 층의 전시장을 돌아보며 느낀 첫 번째 느낌은 집단 개성의 소멸과 개인 개성의 부상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 미술에서도 학연(學緣)은 물론 '70년대의 미니멀리즘, 80년대의 민중미술, 90년대의 설치미술' 식으로 재단할 수 없이 개인 개성이 들풀처럼 무성하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화상(畵商)인 듯싶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년 작가를 보며 살짝 부러움과 함께 질투 같은 감정도 스민다. 마흔이 다 되어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도 자기를 내보이기에 마냥 서툴고 수줍기만 했던 내 기억 때문이었다. 이런 진화된 형태의 청년 미술제는 간혹 잡지 같은 것을 통해 외국 미술계의 소식으로나 접할 수 있을 뿐,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구속받고 있지 않은 듯한 그들의 자유 또한 부러웠다. 오랫동안 아시아 미술의 주제였던 역사와 전통은 물론, 사회와 이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 보이는 작품들 하나하나를 둘러보자니 마치 끝없이 웅얼거리는 랩송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호들로 채워진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젊은 세대의 관심은 오직 '나'인 것처럼 보이며, 그 '나'로부터 파생되는 일상이 퍼즐처럼 조립될 뿐인 것이다.
아쉽게 짚어지는 대목도 있다. 전시장 공간의 제약 때문이겠지만 젊은 패기의 실험적 대작(大作)을 보기 어려운 점과 장르상으로도 지나치게 회화에 편중되고 있는 점이다. 근자에 옥션 등을 통해 떠오르는 작품의 경향이 유독 많이 눈에 띄는 것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제언 한마디.
한 번쯤 이 거대한 청년 미술가 집단에 미술에 있어서의 아시아적 가치랄까 진정성 등 큰 주제를 던져주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넘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아시아프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
3개 층의 전시장을 돌아보며 느낀 첫 번째 느낌은 집단 개성의 소멸과 개인 개성의 부상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 미술에서도 학연(學緣)은 물론 '70년대의 미니멀리즘, 80년대의 민중미술, 90년대의 설치미술' 식으로 재단할 수 없이 개인 개성이 들풀처럼 무성하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화상(畵商)인 듯싶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년 작가를 보며 살짝 부러움과 함께 질투 같은 감정도 스민다. 마흔이 다 되어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도 자기를 내보이기에 마냥 서툴고 수줍기만 했던 내 기억 때문이었다. 이런 진화된 형태의 청년 미술제는 간혹 잡지 같은 것을 통해 외국 미술계의 소식으로나 접할 수 있을 뿐,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구속받고 있지 않은 듯한 그들의 자유 또한 부러웠다. 오랫동안 아시아 미술의 주제였던 역사와 전통은 물론, 사회와 이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 보이는 작품들 하나하나를 둘러보자니 마치 끝없이 웅얼거리는 랩송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호들로 채워진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젊은 세대의 관심은 오직 '나'인 것처럼 보이며, 그 '나'로부터 파생되는 일상이 퍼즐처럼 조립될 뿐인 것이다.
아쉽게 짚어지는 대목도 있다. 전시장 공간의 제약 때문이겠지만 젊은 패기의 실험적 대작(大作)을 보기 어려운 점과 장르상으로도 지나치게 회화에 편중되고 있는 점이다. 근자에 옥션 등을 통해 떠오르는 작품의 경향이 유독 많이 눈에 띄는 것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제언 한마디.
한 번쯤 이 거대한 청년 미술가 집단에 미술에 있어서의 아시아적 가치랄까 진정성 등 큰 주제를 던져주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넘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아시아프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