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4.18 16:07
뉴욕 화랑가어떤 전시 하나
소금산 둘레 매일 8시간 무릎으로 기는 '고행'·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부스
요즘 뉴욕 화랑가의 전시는 국내 화랑 전시와는 뭔가 다르다. 첫째, 화랑은 분명히 미술작품을 팔기 위한 상업 전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상업성이 떨어져 보이는 작품을 자주 전시한다. 둘째, 미술사 대가들의 의미를 되짚는, 미술관 뺨치는 교육적인 전시를 하기도 한다.
뉴욕 최대의 화랑가인 첼시에서 최근 크게 화제가 된 전시는 3월에 메리 분(Mary Boone) 갤러리에서 열린 중국 출신 작가 테렌스 고(Terence Koh·34)의 퍼포먼스였다. 흰 옷을 입은 작가는 무릎을 꿇은 채 전시장 한가운데에 소금산을 높게 쌓아놓고 그 산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하루 8시간씩 5주 내내 꼬박 무릎으로 기는 작가의 '고행'을 보면서 관객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안쓰러워했다. 어떤 관객은 그 작가를 따라 뒤에서 같이 돌기도 했으니,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현대미술의 대표적 예다. 테렌스 고는 사실 기행(奇行)과 도발적인 이미지로 논란을 일으켰던 작가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미술작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뉴욕 최대의 화랑가인 첼시에서 최근 크게 화제가 된 전시는 3월에 메리 분(Mary Boone) 갤러리에서 열린 중국 출신 작가 테렌스 고(Terence Koh·34)의 퍼포먼스였다. 흰 옷을 입은 작가는 무릎을 꿇은 채 전시장 한가운데에 소금산을 높게 쌓아놓고 그 산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하루 8시간씩 5주 내내 꼬박 무릎으로 기는 작가의 '고행'을 보면서 관객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안쓰러워했다. 어떤 관객은 그 작가를 따라 뒤에서 같이 돌기도 했으니,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현대미술의 대표적 예다. 테렌스 고는 사실 기행(奇行)과 도발적인 이미지로 논란을 일으켰던 작가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미술작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3월 초 맨해튼에서 열렸던 뉴욕의 연중 최대 아트페어 '아모리쇼(The Armory Show)'에서는 형광등으로 울타리를 두른 설치작품 '아모리 펜스(The Armory Fence)'가 단연 인기였다. 이반 나바로(Navaro·39)라는 칠레 출신의 작가가 맨해튼의 유명 화랑인 폴 캐즈민(Paul Kasmin) 갤러리 부스 자리에 형광등으로 울타리를 친 작품이다. 멀쩡한 공간에 울타리를 두르면 그 공간이 달라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 작가는 미술 장터의 대명사격인 아모리쇼에 들여 놓은 이 작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지만 들어갈 수 없는 부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을 줄줄이 걸어 놓고 팔기만 하는 전형적인 부스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아트페어가 상업 화랑 수백 개가 한자리에서 장사하는 5일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만 달러 내고 참여하는 비싼 부스를 이렇게 써버리는 건 낭비다. 하지만 당장 그 자리에서 팔릴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그 갤러리의 안목을 홍보하는 전시를 했던 화랑들 덕에 아모리쇼는 판매 총액이 아닌 '볼 만한 전시였다'는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미술시장이 호황일 때엔 어딜 가나 똑같은 작품이 걸려 있기 일쑤였다. 작가들이 '팔리는 작품'의 성향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경기가 안 좋아지자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나오고 있다. 마치 미국이 엄청난 불경기였던 1970년대에 대지미술, 미니멀리즘, 페미니즘 등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주요 경향이 쏟아져 나왔던 것과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미술관 뺨치게 무게 잡는 교육적 전시도 화랑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화랑으로 손꼽히는 가고시언 갤러리에서는 지금 '말레비치와 미국의 유산(Legacy)'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근대미술을 이끈 대표적 작가인 말레비치(1879~1935)의 작품을 중심에 두고 엘스워스 켈리, 도널드 저드, 댄 플레빈 등 미국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그 주변에 둘러 전시해서 미니멀리즘과 같은 미국 현대미술이 말레비치 조형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술사학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재조명하고 있을뿐더러 주요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에서 빌려왔다. 미술관 대여 작품이니 팔 수도 없는데, 단지 전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빌려온 것이다.
4~5년 전 미술시장 호황을 계기로 화랑과 미술관의 벽은 무너졌다. 뉴욕 화랑 전시의 다양한 맛을 보면 화랑이 단순히 미술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미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미술관 뺨치게 무게 잡는 교육적 전시도 화랑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화랑으로 손꼽히는 가고시언 갤러리에서는 지금 '말레비치와 미국의 유산(Legacy)'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근대미술을 이끈 대표적 작가인 말레비치(1879~1935)의 작품을 중심에 두고 엘스워스 켈리, 도널드 저드, 댄 플레빈 등 미국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그 주변에 둘러 전시해서 미니멀리즘과 같은 미국 현대미술이 말레비치 조형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술사학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재조명하고 있을뿐더러 주요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에서 빌려왔다. 미술관 대여 작품이니 팔 수도 없는데, 단지 전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빌려온 것이다.
4~5년 전 미술시장 호황을 계기로 화랑과 미술관의 벽은 무너졌다. 뉴욕 화랑 전시의 다양한 맛을 보면 화랑이 단순히 미술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미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