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민 '석류로 달을 쏘다'

입력 : 2025.05.14 13:58
●전시명: ‘석류로 달을 쏘다’●기간: 5. 13 ─ 6. 7●장소: 본화랑(자하문로 299)
 
Cell Division-Shooting at the Moon XI, Porcelain, oil on Canvas, 55x55cm. /본화랑
Cell Division-Shooting at the Moon XI, Porcelain, oil on Canvas, 55x55cm. /본화랑
Cell Division-Shooting at the Moon IX, Porcelain, oil on Canvas, 50x50cm. /본화랑
Cell Division-Shooting at the Moon IX, Porcelain, oil on Canvas, 50x50cm. /본화랑
 
본화랑은 5월 13일부터 6월 7일까지 승지민 작가의 개인전 <석류로 달을 쏘다>를 개최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주립대학교에서 여성학 석사 과정을 마친 승지민 작가는 한국 전통의 미와 여성성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그는 달항아리,  여성 인체,  석류를 주요 모티브로 삼아 여성과 생명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여성의 신비와 존엄성을 조명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성과 생명,  그리고 치유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포슬린 페인팅과 회화, 부조 기법을 접목한 독창적인 달항아리 작품들을 선보인다. 
 
조선백자의 대표적인 형태인 달항아리는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대상이다.  현대 예술가들은 달항아리만의 독특한 미감을 각자의 언어로 해석하며,  그것이 지닌 역사와 형식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전통적인 형태와 내재된 미의식을 현대적 맥락에서 탐구하는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미적 재현을 넘어,  그 의미와 가치를 다층적으로 확장시킨다.  이로써 달항아리는 정적인 유물을 아닌 시대와 관점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며 다양한 담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존재가 된다. 
 
‘석류로 달을 쏘다’ 전시 전경. /본화랑
‘석류로 달을 쏘다’ 전시 전경. /본화랑
 
승지민은 달항아리를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사유한다.  과거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선비 정신의 산물로 여겨졌던 달항아리를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연결 지으며 재해석한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젠더와 여성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단순한 전통 미술의 오브제가 아니라, 여성성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달항아리의 유려한 곡선과 풍만한 형태는 생명력을 품은 여성의 신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이는 여성성과 관련된 무의식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닌 달항아리는 출산과 모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여성성의 이상적 상징에 국한되기보다 오히려 여성 내면에 자리한 복합적인 감정과 잠재성,  그리고 창조적 에너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한 의미에서 승지민의 달항아리는 수동적이고 제한된 여성성의 상징이 아닌,  주체적인 공간,  즉 새로운 여성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열린 그릇이자 상징으로 읽힌다.  
 
‘석류로 달을 쏘다’ 전시 전경. /본화랑
‘석류로 달을 쏘다’ 전시 전경. /본화랑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탐구는 석류라는 모티브와 결합하여 더욱 구체적이고 상징적으로 형상화된다.  작가는 포슬린 페인팅에 전념하던 시기, 보티첼리의 석류의 성모에서 아기 예수의 손에 들려 있던 석류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생명 기관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여성의 몸으로의 상징적 확장을 발견한다. 석류는 기독교적으로 고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동시에,  수많은 씨앗을 품은 다산의 과일로서 여성성과 생명의 이미지를 내포한다.  작가는 석류의 구조에서 세포 분열을 연상하며,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자 창조의 원형으로서 이를 조형적으로구현해낸다.  이처럼 붉은 빛깔의 석류는 다산과 풍요,  생명력의 상징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의 진취성과 창조성 그리고 재생의 힘을 담아낸다.  석류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끊임없이 나아가고 분열하며 새로워지는 생명의 서사이자,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피어나는 존재로 표현된다. 
 
승지민 작가의 신작은 달항아리 위에 새겨진 붉은 석류를 통해 여성 내면에 깃든 생명의 잠재력을 시각화한다. 유백색 달항아리와 그 위에 대비되는 붉은 석류의 강렬한 색채는 순수함과 생명력,  고요함과 진취성 같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환기시키며 깊은 인상을 준다.  특히 이번 신작은 윤동주 시인의 시 <달을 쏘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시인이 느꼈을 고뇌와 그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꿈,  그리고 그 곁을 묵묵히 지켜보던 달의 존재를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작품 속 달항아리는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연상시키며, 고요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내면의 감정을 담아낸다. 달항아리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노을이 물든 밤하늘처럼 차분하면서도 찬란한 정서를 품고 있으며, 이는 작가가 느끼는 동시대 여성으로서의 감정과 시선을 은유적으로 투영한다. 이번 신작은 여성으로서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시적 감수성과 결합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년을 기리며 기획된 이번 전시는,  승지민 작가의 여성성에 대한 탐구와 그 안에 내재된 창조성과 회복력,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대적 시선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 손에는 꿈을,  한 손에는 용기를 쥐고”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올린 소년의 모습처럼,  승지민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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