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이고 예쁜 것이 ‘요즘 스타일’… 민화 ‘문자도’

입력 : 2021.10.22 00:00

무명작가들이 그려낸 그 시대 희로애락
박방영·손동현·신제현 3인 현대적 회화 함께 구성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31일까지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조선시대 민화에는 선조들의 삶과 희로애락 그리고 염원이 그대로 담겨있다. 누군지 모를 아무개가 그렸을지라도 가장 한국적이면서 독창적인 그림이다. 
 
그간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됐던 민화의 시대성과 예술성에 주목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모태’로서의 민화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현대화랑은 민화, 그중에서도 문자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전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를 이달 31일까지 개최한다.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현대화랑은 2018년 화조도 기획전을 통해 민화의 재발견은 물론 꽃그림에 대한 미술애호가의 호평을 이끈 바 있다. 후속전 성격의 이번 ‘문자도…’전(展)에서는 빼어난 조선 시대 문자도 11점과 문자도를 새롭게 재해석한 현대미술가 박방영, 손동현, 신제현 3인의 작품 13점을 함께 선보인다.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이번 전시 서문에서 문자도에 대해 “그린이의 상상력에 따라 신출귀몰하고 불가사의한 표현이 가득한 민화 속에는 자연의 본성을 담아낸 당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 가운데 문자도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prototype)에서 대상을 생략하거나 과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표현이 풍부하다”라고 설명한다.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특히 이번 전시는 한자를 활용한 동아시아 문자도 가운데서도, 유교의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를 그린 독특한 문자도를 주목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문자도는 18세기에 성행하며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세기 후반에는 장식화의 경향을 보이며 점차 조선 시대 생활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는데, 조선시대 민화임에도 현대적인 화조화 패턴의 타이포그래피를 연상하기도 한다.
 
풍부한 회화성과 세련된 미감이 돋보이는 <문자도>가 이번 전시에 다수 내걸렸다. 문자도로 자획을 상형으로 꾸미던 전형적인 양식을 탈피해 소재의 상징 내용보다 꽃의 장식성을 한 폭의 추상화처럼 단순화시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품작 대부분은 작자미상이지만 그중에는 ‘갑오춘서(1894년)’라는 제작시기와 ‘조선의주에 사는 장인선’이라는 제작자가 정확하게 명시돼 있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도 전시됐다. 복(福) 자와 수(壽) 자를 번갈아 100번을 반복해 구성한 이 작품은 오래 사시고 복을 누리라는 수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글자를 이용해 뜻을 전달하는 것과 더불어 회화로서도 완성도가 높다.
 
2층 전시실에서는 기본적인 효제문자도를 바탕으로 제주도의 자연과 토속적인 문화가 적극 반영된 <제주문자도>를 모아 선보인다. ‘바다·섬·하늘’을 떠올리는 3단 구성을 취하는 제주문자도는 상단과 하단에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담긴 건물과 기물이, 중앙에는 새나 물고기의 형상을 띤 문자가 배치돼 있단. 제주도식으로 변용된 제주문자도는 조선시대 유교문자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각 지역의 토속적인 문화와 결합하여 지방예술로 자리매김한 양상을 보여준다.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전경 /현대화랑
 
이들 민화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현대 미술이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인간 삶의 이야기를 일필휘지의 필법과 상형그림으로 그려낸 박방영,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소재와 그라피티와 같은 현대적인 주제를 결합시켜 동양화의 관습적인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손동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화조문자도를 오마주하고 천하게 여겨지던 민화의 가치를 새로운 인식 속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신제현의 작업이 전시된다.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은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국립근대미술관이 건립될 것이다. 그 안에 ‘조선민화관’을 만들어 우리 근대 미술사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면, 우리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데 더욱 분야가 넓어질 것이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민화들은 세계 유수한 미술과 견주어보아도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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