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하거나, 와닿거나… 가족 해체 향한 두 시선

입력 : 2017.04.17 00:10

- 국립극단 연극 '광주리를 이고…'
억척 할매가 바라본 무기력 가정

- 극단 사조의 '사랑해요 당신'
치매 아내 돌보는 가장 다뤄

'50대 조기퇴직·60대 이상 고독사 증가… 부모 부양 갈등 상담 10년 전보다 4배 늘어'(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24년 치매 환자 100만명'(보건복지부)…. 최근 일주일 사이 검색된 뉴스들이다.

가족 붕괴 사회를 통쾌하고 신랄한 시선으로 바라본 두 편의 연극이 눈길을 끈다. 국립극단의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이하 '광주리…'·연출 최용훈)와 이순재·정영숙·장용·오미연 등 노장 연기파 배우들의 주연으로 화제가 된 '사랑해요 당신'(연출 이재성).

광주리 할머니(홍윤희)는‘보따리 장수’로 가정을 일으켰고, 나이 든 뒤에도 매일 역기로 체력 단련하는 생존력 강한 존재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1960~70년대를 살아낸‘어르신 세대’의 상징 같다. /국립극단
광주리 할머니(홍윤희)는‘보따리 장수’로 가정을 일으켰고, 나이 든 뒤에도 매일 역기로 체력 단련하는 생존력 강한 존재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1960~70년대를 살아낸‘어르신 세대’의 상징 같다. /국립극단
리듬감 있는 대사로 비극적 현실을 코믹하게 그려낸 '광주리…'의 주인공 면면을 보자. 담요 속에 파묻혀 살며 '미리' 노인 체험하려는 무기력한 백수 손녀, 막장 드라마로 위안 삼는 조기 퇴직 가장, 끼니 걱정에 전국 떠돌며 땡처리 물건을 사재기하는 엄마, 자식에게 버림받은 쪽방촌 독거노인…. 자식들은 서로 어머니 모시기 싫다며 한바탕 '소심한' 칼부림까지 벌였다. 광주리를 이고 생계를 꾸렸던 억척 할매는 집안 물건을 조금씩 내다 팔며 노후를 스스로 챙기려 한다. 소시민 가정의 총체적 난국을 담은 '2017 가족 해체 보고서'.

자식들도 할 말은 있다. 돈을 벌어 보려 노력해봐도 '나이' '갑질' 등 장벽에 부딪히며 수모를 겪는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이웃집 혹은 우리 집 이야기처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힘은 3~4년간 탑골·장충단 공원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현장을 꼼꼼히 담은 윤미현(37) 작가의 취재력에서 나온다. 연극은 현실을 과장하지도, 해답을 주려 하지도 않는다. "왜 너희들은 내 것 가지고 가는 것은 당연하고 너희들 거 내가 가지고 오는 것은 못마땅하냐"며 광주리 할매가 모든 걸 처분한 뒤 유유히 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쾌감을 대신한다.

극단 사조의 '사랑해요 당신'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더 드라마 같다. 아내에게 그동안 "밥 차려" 외엔 살갑게 굴어본 적 없는 딱딱한 남편. 아내가 갑자기 치매 증상을 보이자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노력한다. 맨발로 나다니는 아내의 발을 닦아주고, 옆집 옷을 훔친 아내를 대신해 사과하고, 아내에게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고 소리치는 남성에게 당당하게 맞선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로 요약되는, 어쩌면 뻔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이순재·정영숙, 장용·오미연의 부부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객석을 눈물바다로 이끈다. 객석엔 50~60대 부부가 많았는데, 소극장을 나오며 두 손을 꼭 잡는 커플이 여럿이었다.

광주리를… 23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1644-2003. 사랑해요 당신 5월 28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1566-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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