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성진, 드라마틱한 성장 서사

입력 : 2017.01.04 09:36
조성진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은 조마조마한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단연코 확신이 드는 음들을 거침없이 눌러갔다.

그가 3일 밤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들려준 쇼팽 발라드 4번은 야누스(Janus)였다. 공존할 수 없는 해석이 내내 동시에 아른거렸다.

인생의 환희와 질곡을 압축해놓은 듯한 12분짜리 이 곡의 후반부에서 조성진은 격정으로 치달으면서도 믿을 수 없게 차분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온도 차이는 그에게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이날 공연은 조성진의 드라마틱한 성장서사를 한 눈에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난 2015년 10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후 수상자 갈라,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국내 무대에 두 차례 올랐던 그이지만 홀로 피아노 연주만 들려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설가 겸 비평가 앙드레 지드에 따르면, 피아노 치는 쇼팽은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조금씩 탐색하고, 지어내고, 발견해나가는 듯했다.

이날 조성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된 앨범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발라드'에는 4번뿐 아니라 발라드 1·2·3번이 모두 실렸는데 이날 연주한 이 모든 발라드는 음반 속 쇼팽과 또 다른 쇼팽이었다.

"연주자가 배반할 수 있고, 깊이, 내밀하게, 또 온전히 변질 시킬 수 있는"(앙드레 지드) 쇼팽을 매력을 이미 인지하고 그 안에서 오히려 자유로웠다.

현란했지만 야단스럽지 않았고 풍부했지만 느끼하지 않은 이유다. 특히 호수의 잔잔함과 바다의 거친 풍랑을 오간 발라드 2번에서의 균형 감각은 탁월했다. 조성진이 이야기꾼이라는 것도 증명한 연주였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은신처에 숨어 있던 주인공이 독일 장교 앞에서 연주하는 발라드 1번을 등정할 때는 등고선이 명확했다. 특히 잔향에도 멜로디를 숨겨놓은 듯, 음의 여백이 생길 때조차 청중이 함부로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

쇼팽 발라드로 꾸민 2부에 앞선 1부에서도 조성진은 다양한 얼굴을 꺼내보였다. 서정과 혁신이 동시에 깃든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에서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처럼 집중력 있게 파고들었고, 복잡한 구성의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을 연주할 때는 명도와 채도의 조절에 망설임이 없는 '색채의 마법사' 화가가 꼭 쥔 붓처럼 연주했다.

앙코르 첫 곡으로 들려준 드뷔시의 '달빛'은 그를 왜 이야기꾼으로 명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에필로그 같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고요한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그의 손놀림은 차분하면서도 뜨거웠다. 서울시향 연주 등에서 앙코르로 자주 울려퍼진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이 두 번째 앙코르였는데, 여운의 미열을 유지시켜주는 흥겨운 선곡이었다.

앞서 총 이틀 간 진행한 예매에서 롯데콘서트홀 회원이 아닌 일반을 상대로 한 두번째 날 9분 만에 티켓이 모두 매진됐던 이번 콘서트의 사인회 줄 역시 길게 늘어섰다. 오후 10시20분부터 오후 11시8분까지 진행됐는데 조성진은 줄을 서 있던 600여명에게 모두 사인을 해줬다. 준비된 프로그램 1000부가 모두 소진, 추가로 700부를 긴급 제작했으며 메모장, 달력 등 조성진 관련 MD 상품도 끊임없이 팔려나갔다.

조성진은 4일 한차례 더 롯데콘서트홀을 뜨겁게 데운다. 1부는 전날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꾸미되 2부는 발라드 대신 쇼팽의 24개 전주곡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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