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이러려고 관제사를 죽였나" 그 남자의 자괴감

입력 : 2016.11.20 09:32
■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2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는 젊은 연극 창작집단 '양손 프로젝트'의 신작답다.

영국 작가 겸 배우 매튜 윌킨스가 쓴 글이 원작이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가족을 잃은 러시아인 아버지를 다룬다. 사고의 주원인으로 항공 관제사의 실수가 지목된다. 아내와 두 아이를 잃은 니콜라이 코슬로프는 관제사를 살해한다.

'죽음과 소녀' 등 양손프로젝트 이전작처럼 윤리의 층위와 역학 관계가 작품 속을 파고든다. 그 중심에는 트라우마가 굵게 똬리를 틀고 있다.

니콜라이는 한 순간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는 분노,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등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다. 윤리의 외적인 규제인 법도 그의 트라우마를 해소시키지 못한다. 회사의 시스템대로 행했을 뿐인 관제사는 물리적인 책임에서는 벗어난다.

피해자만 남은 상황에서 니콜라이가 복수로 읽힐 수 있는 행동에 나서는 이유다. 법적인 옳고 그름 혹은 도적적인 순결함의 치명타를 떠나 그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당위였다.

그렇다면 관제사의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그는 니콜라이처럼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남은 가족은 니콜라이에 대한 분노를 품어야 하는가,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윤리의 층위와 역학은 한층 복잡해지고 관객들은 결국 물음을 안고 객석을 떠난다. 양손프로젝트는 심리적으로 복잡해지는 이야기를 응축된 무대와 연기로 풀어낸다. 블랙박스 극장인 스페이스111에서 무대는 동그랗게 둘러싼 객석 안에 있다. 소품은 의자 4개와 스툴 1개가 전부다.

니콜라이 역의 손상규를 비롯해 양조아, 양종욱 등 양손프로젝트 배우 3명은 세심한 연기로 인물들의 초상화 심리의 세밀화를 그려나간다. 신경심리학자 장재키의 심리 자문을 받아 트라우마를 앓는 인물들의 호흡마저 재현한다. 흠 없어 보이는 공연 도중에도 객석에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연출 박지혜는 티나지 않는 연출의 경지에 이르른 듯 보인다.

러닝타임은 70분이다. 이야기든 무대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심리 상태를 채우는 미니멀리즘의 역설적인 미학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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