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자작 "나라 지키기 위해 전쟁하는 젊은이들에 공감 할듯"

입력 : 2016.11.08 09:41
뮤지컬 '시라노' 연출
프랑스 극작가 겸 시인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897)는 기형적인 긴 코를 지닌 시라노의 헌신적인 외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직접 나서지 못한 채, 먼 친척 여동생 록산느에 대한 사랑을 잘생긴 크리스티앙의 구애를 통해 대신 고백한다.

이 작품이 바탕인 뮤지컬 ‘시라노’를 연출하는 구스타보 자작은 “크리스티앙보다 시라노에 더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크리스티앙은 축복을 받고 태어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며 “그러나 시라노는 인생에서 2등을 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시라노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인물로 생각했어요. 저 자신 역시 시라노에 가까웠죠.”

아르헨티나 출신의 자작은 차근차근 연출가로 거듭났다. 9세 때 배우로 무대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TV에도 나온 그는 춤을 익힌 뒤 27세에 안무가가 됐다. 영어에 능했던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아르헨티나에 공연을 온 브로드웨이 관계자가 그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이후 인연이 돼 연출가까지 된 것이다.

브로드웨이 진출은 덧없이 화려했다. 뮤지컬계 전위적인 작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와이즈 가이스(Wise Guys)’의 협력 안무가를 맡아 현지 진출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데스가 감독을 맡았다. “덧없이 영광이었죠”라고 싱글벙글이다.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작업에 참여한 그는 CJ E&M이 이 작품의 라이선스를 가져가면서 2008년 연출로 한국에 데뷔하게 됐다. 극작가 조셉 슈타인이 쓴 이 작품은 다섯 딸을 키우는 유대인 가정의 아버지가 겪는 세대 간 갈등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다뤘다. 극 중 주인공처럼 자작의 조부모도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온 유대계다.

따듯하면서도 공감가는 연출로 호평 받은 그는 이후 지한파가 된다.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동명 드라마가 바탕인 창작 뮤지컬 ‘파리의 연인’, 한국 창작뮤지컬의 효시로 통하는 ‘살짜기 옵서예’의 리메이크 버전을 연출한 것이다.

총 3개의 공연을 거치면서 한국문화에 깊이 빠졌다는 자작 연출은 “제 가치관을 한국의 문화와 섞고자 했다”며 “그런데 ‘살짜기는 옵서예’는 한국적인 감성을 불어넣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살짜기 옵서예’는 죽은 아내와 정절을 약속한 ‘배 비장’과 기생 ‘애랑’ 간의 사랑을 그린다. 제목은 ‘살금살금 오세요’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앞선 두 작품의 연출을 맡지 않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작품이죠.”

네 번째 연출작인 ‘시라노가 그래서 더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2009년 일본 초연 당시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극적인 음악이 더해졌다는 호평을 받은 작품을 한국 식으로 충분히 재해석할 수 있다는 기대다. ‘지킬 앤 하이드’로 국내 마니아층을 확보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선율이 귓가를 감돈다. 특히 뮤지컬스타 류정한의 프로듀서 데뷔작으로 화제가 됐다. 2017년 7월부터 약 2개월간 LG아트센터에서 무대에 오른다.

“함께 작품을 한 적은 없지만 류정한 배우는 현명한 배우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어요. 프로듀서로도 감각이 뛰어나요. 그와 한국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고 싶어요.”

자작 연출은 ‘시라노’의 이야기가 커다란 두 개의 줄기로 이뤄졌다고 봤다.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야기죠. 결국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한국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하죠.”

그는 뮤지컬 작업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매번 불안정함을 느끼게 하는, 긴장된 작업이다. “저는 항상 시험을 항상 보는 사람이에요. 한번 시험을 통과했다고 안주하는 편도 아니죠. 뮤지컬 관련 일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직업 중 하나입니다 ‘살아 있는 괴물’ 같다고 할까요. 매번 다르니 훈련이 힘들죠.” 그럼에도 매번 백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웃었다.

역시 매번 불안해하고 있을 한국의 젊은 뮤지컬 연출가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조금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무조건 움직이세요. 위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안정을 추구한다면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뮤지컬은 지붕 위에 놓인 ‘바이올린’처럼 불안한 것이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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