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기민 "러시아에서 인정받아 기쁘지만 무서운건 익숙함이죠"

입력 : 2016.10.04 10:26
“발레에서 테크닉 등 기본기도 중요하죠. 근데 제가 가장 내공을 쌓으려고 하고, 신경을 쓰는 부분은 ‘캐릭터의 감정선’이에요.”

지난 5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남자 무용수상을 받은 김기민(24·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의 무대에 빠져드는 이유다.

“제 나이가 아직 어리니까, ‘이 정도의 감정 표현이면 됐다’는 안일한 생각은 싫어요.” 최근 휴가를 맞아 귀국한 그는 해맑게 웃는 앳된 미소년의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김기민은 ‘천의 얼굴’을 지닌 무용수다. ‘백조의 호수’ ‘해적’ ‘돈키호테’ 등 한 무용수가 연기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깊이 있는 연기 내공에 그의 나이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로 여기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래도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직 적으니까, 그래서 많이 보고 듣기 위해 노력해요. 영화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그런 걸 하나둘씩 쌓아놓고 계속 꺼내보려고 하죠.”

왕자라고 품위 있게만, 전사라고 강렬하게만 연기하지 않는 이유다. “제 나이를 부러 숨겨요 숨기요. 어리게 보는 것이 싫어서요. 무대 위에서 어른스럽게 춤을 춘다고 해주시면 기분이 좋아요.” 그에게서는 또래에서 찾기 힘든 ‘아날로그 감성’도 뭉근하게 깃들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활약한 김광석, 이승철, 부활, 임재범이 그가 좋아하는 가수들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재미있게 봤어요. 그 시절, 그 감성들이 뭉클하더라고요. 하하.”

감성과 함께 김기민의 장점으로 꼽히는 건 체공 시간. 그가 점프를 한 뒤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사진을 감상하는 듯하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찰나를 담는 ‘결정적 순간’의 미학처럼 말이다. ‘시간의 예술’인 무대 장르가 한편의 ‘회화 예술’처럼 느껴진다.

“음악을 쓰는 타이밍을 계속 생각해요. 같은 박자 안에서고 스텝을 더 밟는다든지의 고민을 하죠. 공중에서 팔과 다리를 더 길게 뻗기도 하고요, 캐릭터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어요. 같은 점프 장면이라도 ‘라 바야데르’의 전사, ‘백조의 호수’의 왕자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테크닉은 해당 인물의 감정과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기록이자 기억이라는 것이 김기민의 판단이다. “러시아에서 할머니가 1년 전에 제 ‘라 바야데르’ 공연을 보셨는데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관객들에게 그런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게끔 선물을 드리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지난달 28일에는 자신의 모교인 예원학교를 찾아갔다. 내년 이 학교의 5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에 와서 시간이 날 때마다 스승을 찾아뵙는 그는 이번에 후배들도 만났다.

“마린스키 발레단 이야기도 해주고, 슬럼프를 극복한 이야기도 해주고. 재미있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모법적인 선배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혼돈스러워할 때 조금이나마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라 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해요. 그 원하는 걸 위해서는 포기할 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줘요.”

김기민은 예원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과정으로 입학했다. 2009년 12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국내 직업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로 ‘지그프리트 왕자’를 맡아 호평 받은 그는 2011년 11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는 등 발레리노의 새 역사를 써갔다.

3년여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뒤 한국 발레리노로는 처음으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자 무용수상을 받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김주원 성신여대 교수 등이 이 상을 받으며 한국 발레리나 역사를 써내려간 데 이어 김기민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발레 신동의 화려한 이력에 그간 김기민의 천재성만 부각됐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노력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예원학교와 한예종에 재학 시절, 경비 아저씨의 주된 일과 중 하나는 늦게까지 연습하는 김기민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노력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섭섭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니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셀프 디스’를 잘하는 무용수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저는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하기 때문에 제 춤을 사랑해요. 그러면서도 단점을 계속 깨닫게 돼 보완을 계속 하려고 하죠.”

김기민과 인터뷰에서는 모든 언론을 막론하고 항상 따라 붙은 질문이 있다. 역시 발레리노인 형 김기완(27)이다. 훤칠한 키(188㎝)와 준수한 외모로 팬층을 확보한 김기완은 김기민이 “형처럼 되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기량 역시 안정적이다. 김기완 역시 김기민이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았을 동시 동생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 공세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질문에 지겨울 법도 한데, 이 우애깊고 현명한 형제는 ‘형’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함박웃음을 짓는다. “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요. 형은 ‘네 인터뷰에 왜 내 이야기밖에 없냐’고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형 덕분에 항상 배우고 느끼죠. 서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라 할까요.”

마린스키 발레단 새 시즌을 위해 5일 출국하는 김기민에게 이 발레단에 입단 했을 당시에 이렇게 빨리 성공적인 무용수로서의 삶을 누리게 될 줄 알았냐고 묻자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지냈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처음부터 성공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제 마음 속에서는 무용을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러시아라는 예술의 나라에서 많은 걸 얻고 싶었죠. 물론 주역이 되고 큰 상을 기뻐요. 하지만 정말 한순간이에요. 그로 인한 기쁨은 1시간도 못 가죠. 그 보다 앞두고 있는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더 들어요.”

지난 5년 동안 아시아 무용수로서 ‘발레 종주국’인 러시아에서 생활하고 활약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법하다.

김기민은 “어려움을 겪고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려움을 피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더 무서운 건 익숙함이에요. 사람 관계서도 마찬가지잖아요. 익숙해지면 서로 소원해지고. 무대 위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편안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져요. 그러면 순수함과 설렘도 없어지죠. 무대 위에서는 항상 풋풋하고 설렜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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