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 알리는 두 여인] "나답고 우리다운 게 가장 세계적"

입력 : 2011.07.26 00:50

'제2의 윤이상' 在獨 작곡가 박-파안 영희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6·25 직후 저희 집 앞에서 거지꼴을 한 웬 아저씨가 해금을 켰어요. 여덟 살 꼬마였던 저는 날마다 그에게서 음악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유럽에서 '제2의 윤이상'으로 통하는 재독 작곡가 박-파안 영희(Younghi Pagh-Paan·66)씨가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다음 달 13일까지)에서 작품 '타령 VI'을 아시아 초연한다. 25일 만난 그는 "현대음악이 잘 연주되지 않는 한국에서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160㎝가 채 되지 않는 체구에서 크고 또렷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파안(琶案)'은 1978년 '만남'이란 곡으로 스위스 보스윌 세계작곡제에서 1등한 뒤 "박씨가 하도 많아 외국인들이 헷갈려하기에"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책상 위 비파'라는 뜻. 파안대소(破顔大笑)의 '파안'을 떠올리며 "내 음악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다.

충북 청주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까지 교량 건축가인 아버지의 진짓상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를 여읜 뒤로는 학교에 새벽같이 가서 촛불 켜고 피아노를 쳤다. 1965년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 1974년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 갔다. 1980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군부 정권 반대 시위 중 한 학생이 탈춤 추는 것에 영감을 받아 만든 관현악곡 '소리'가 호평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4년에는 독일어권을 통틀어 최초의 여자 정교수(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과)가 됐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박씨의 작품은 '타령 VI'(28일)과 '만남'(29일)이 소개된다. '타령 VI'은 연주자 18명이 필요한 대(大)곡 '타령 II'(1988년 작)를 6명이면 충분하도록 편곡한 소(小)곡이다. '만남'은 신사임당이 고향 강릉의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 '사친(思親)'을 각 장의 제목으로 삼았다. 제목도 우리 발음 그대로 살린 'man-nam'이다. 그는 "37년간 유럽서 살았지만 영혼과 정서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전체 60곡 중 5분의 4가 한국어 제목"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타악기로 자주 등장한다. 이날도 탁자 위 후추통과 설탕 접시, 1회용 케첩 봉지 등을 따그닥따그닥 부딪치며 즉석에서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냈다. "어려운 건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에요. '나'다운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지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파도 있고 계란도 하나 있어, 그걸 어떻게 맛있는 요리로 만드나, 그게 훌륭한 요리사입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