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0.15 15:54
●전시명: '산을 쌓고 백일몽을 꾸리라'●기간: 10. 10 ─ 11. 9●장소: P21(회나무로 66)

P21은 오는 10월 10일부터 박성소영 작가의 개인전 ‘산을 쌓고 백일몽을 꾸리라’를 개최한다.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 설치와 소형 회화 등 12점의 신작으로 구성되며, 감각과 충동에 기반한 회화적 언어를 통해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시각화 한다.

강렬한 색감과 작가언어적 형태, 즉흥적인 물감 뿌리기 등을 통해 특정한 대상을 묘사하거나 이야기 구조를 따르기 보다는, 미적 충돌과 시각적 층위를 통해 이미지가 발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기적인 곡선과 기하학적 형태들이 겹겹이 뒤섞여 나타나는 화면은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잔상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관람자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소환되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인어,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이나 마추픽추, 차마고도처럼 경이로운 경관들은 직접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지만, 색채와 형상의 구성으로써 초월적 시공간을 암시하고 관람자의 내면에 연상되도록 유도한다. 이는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정서나 문명, 지각 사이의 간극을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연결하는 작가의 방식이자, 회화가 지닌 물질성과 시각성의 고유한 소통 방식을 실험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전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구체적인 형상과 비정형의 추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물, 공기, 구름과 같이 유동적인 형태를 정의할 수 없는 비물질적인 감정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회귀할 수 없는 과거나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의 감각을 자극하고, 반대로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기하학적이고 파편적인 형태들은 시간성과 유한성, 문명에 대한 피로감, 정서적 소외를 상징한다. 서로 상반된 이미지 계열이 한 화면 안에서 대립하며 시각적 긴장을 형성하는 동시에, 확연히 다른 색감과 질감으로 서로를 강조하며 화면을 확장해 나간다.

박성소영의 작업은 전통적인 유화 기법과 현대적인 스프레이 재료를 병용하여 금속성 안료와 유화 물감의 조합을 통해 깊이 있는 색조와 시각적 균형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갑사 한복’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고유한 색감은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의 전이와 확산을 유도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작업은 철저한 의도와 즉흥적인 제스처가 혼재된 구조로 진행된다. 일부 화면은 세밀하게 구성되지만, 그 위에 뿌리기, 덧칠하기와 같은 물리적 개입이 이루어지며, 이는 순간적인 감정의 흔들림과 물성의 예측 불가능한 흐름을 동시에 수용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시간의 단면을 포착하고, 그 틈에서 발생하는 심적인 진동을 화면에 고스란히 남긴다.


이번 전시 ‘산을 쌓고 백일몽을 꾸리라’는 실현 불가능한 기대나 논리에서 벗어나 내면의 충동에 자신을 맡기는 상상적 전환의 과정을 담아낸다. 작가는 붓질과 색의 충돌, 물감의 층위로 구성된 이미지들을 통해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감정의 입자들을 화면 위에 흩뿌리고, 관람자가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유희하길 기대한다. 이처럼 작가는 회화를 통해 억압적인 문명 속에서도 내면의 움직임을 살아 있게 만드는 독자적인 생존의 방식을 제시하며, 회화라는 매체가 지닌 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