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품은 각각의 시공간… 전시장은 우주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입력 : 2025.09.12 11:20

2026년 8월 8일까지 제주 포도뮤지엄
모나 하툼·제니 홀저·로버트 몽고메리 비롯한 국내외 작가 13인 참여
포도뮤지엄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완성한 공감 전시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디렉터 "우주의 스케일을 떠올려 본다는 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초월하는 힘을 준다"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2019, 콘크리트, 철근, 528x530x530cm. /작가, 화이트 큐브 제공, 사진 아트조선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2019, 콘크리트, 철근, 528x530x530cm. /작가, 화이트 큐브 제공, 사진 아트조선
 
1차원은 직선, 2차원은 면, 우리가 사는 3차원은 공간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모험하고자 하는 본능은 예로부터 이어져 왔다. 인간은 4차원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학자들은 4차원에 대해 시간에 따른 공간이 가로, 세로, 높이 이외의 또 다른 축으로 나열되어 있는 형태라고 추측한다. 4차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모습은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온다. 4차원 공간의 우주에서 아빠 쿠퍼는 딸 머피를 두고 떠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한다. 영화 속 4차원 공간은 각각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공간이 늘어지기도, 교차되기도 하며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블럭처럼 나열하듯 보여준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 컷.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 컷.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로 떠난 아빠와 지구에 남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우주 속 미지의 영역에서도 오직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힘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전시실의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디테일 컷. /아트조선
1전시실의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디테일 컷. /아트조선
고유시, 2025, 시계 560개, 가변 설치. /작가 제공
고유시, 2025, 시계 560개, 가변 설치. /작가 제공
 
2026년 8월 8일까지 열리는 제주 포도뮤지엄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에는 작품이 각각의 입체적인 시공간을 품고 있다. 내전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모나 하툼(Mona Hatoum)은 1975년의 레바논을, 마르텐 바스(Maarten Baas)는 시계바늘을 끊임없이 조립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 노동자의 시간을, 이완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현대인의 시간을, 수미 카나자와(Sumi Kanazawa)는 신문 속 시간과 공간을 작품에 담았다. 하나의 전시실에도 이토록 다양한 시간이 흐른다.
 
이 밖에도 제니 홀저(Jenny Holzer), 라이자 루(Liza Lou), 애나벨 다우(Annabel Daou), 사라 제(Sarah Sze), 부지현(Boo Jihyun), 김한영(Kim Han young), 송동(Song Dong), 쇼 시부야(Sho Shibuya), 로버트 몽고메리(Robert Montgomery) 같은 동시대 거장이 참여한다.
 
로버트 몽고메리,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 2025, 알루미늄에 분채도장, 카본, LED 전구, 295x590cm. /SK Inc., 소장, 작가, 할시온 갤러리
로버트 몽고메리,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 2025, 알루미늄에 분채도장, 카본, LED 전구, 295x590cm. /SK Inc., 소장, 작가, 할시온 갤러리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담은 작가의 작품이 3차원이라면, 각 작품을 모아놓은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의 전시 공간은 4차원 우주다. 전시를 감상하고 야외 공간으로 나오면 정원에 설치된 포도뮤지엄 소장품 로버트 몽고메리(Robert Montgomery)의 LED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2022년 루브르 박물관 튈르리 정원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은 단 한 문장으로 이번 전시의 여정을 관통한다. “사랑은 어두움을 소멸시키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다.”
 
사라 제, Sleepers, 2024, 혼합매체, 종이, 끈, 비디오 프로젝터, 알루미늄, 가변 설치. /가고시안
사라 제, Sleepers, 2024, 혼합매체, 종이, 끈, 비디오 프로젝터, 알루미늄, 가변 설치. /가고시안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디렉터는 “가끔씩 우주의 스케일을 떠올려 본다는 것은 생각의 분모를 키우는 일이고,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초월하는 힘을 준다”라며, “이번 전시는 처음에는 다소 무겁고 파격적인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작가들의 눈에서 아름다움과 희망적인 메세지를 발견하고, 폭력에서 치유로의 변화 과정을 체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전시 전경.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전시 전경. /포도뮤지엄
 
전시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1전시실 ‘망각의 신전’에서는 폭력과 증오의 해악을 잊고 과오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다. 장엄함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네 여성 작가가 던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1.6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와 철근이 공중에 매달린 모나 하툼의 작품 ‘Remains to be Seen’은 평온해 보이면서도 위태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밖에도 제니 홀저, 라이자 루, 애나벨 다우의 작품이 전시된다.
 
수미 카나자와, 신문지 위의 드로잉, 2017-현재, 혼합재료, 가변 설치. /작가 제공
수미 카나자와, 신문지 위의 드로잉, 2017-현재, 혼합재료, 가변 설치. /작가 제공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2전시실 전경.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2전시실 전경. /포도뮤지엄
 
2전시실 ‘시간의 초상’에서는 수미 카나자와, 마르텐 바스, 사라 제, 이완 네 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방식과 감각으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시간이 가진 고유한 성격과 표정을 섬세하게 발견하며,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관람객은 이들의 작업을 통해 시간의 상대성과 그 앞에서 무력한 인간 존재의 공통된 조건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테마공간 전시 전경.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테마공간 전시 전경. /포도뮤지엄
 
2전시실과 3전시실 사이 테마공간에는 ‘유리 코스모스’와 ‘우리는 별의 먼지다’를 만나볼 수 있다. ‘유리 코스모스’는 다양한 폭력의 생존자들이 숨을 불어넣어 만든 유리에 관람객의 숨을 불어넣으면 수백 개 유리 전구가 연쇄적으로 빛을 발하는 키네틱 작업이다.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몰입형 설치 작품이다. LED 디스플레이와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1977년 보이저 호의 ‘골든 레코드’가 울려 퍼진다. 포도뮤지엄은 매 전시마다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기획한 테마공간을 설치해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3전시실 전경. /포도뮤지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3전시실 전경. /포도뮤지엄
 
3 전시실 ‘기억의 거울’에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서로를 비추고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공간이다.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을 소개하는 ‘ACA in PODO’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부지현, 김한영, 송동, 쇼 시부야가 참여한다.
 
포도뮤지엄 외부 전경. /포도뮤지엄
포도뮤지엄 외부 전경. /포도뮤지엄
 
본지는 전시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생생한 언어로 포도뮤지엄의 스토리텔링이 깃든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전하기 위해 취재를 진행했다. 아래는 손현정 포도뮤지엄 팀장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는 1990년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바라보며 촬영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출발합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먼지처럼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찰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 속 폭력과 갈등, 시간과 노동의 굴레에 짓눌리며 때로는 서로에게 날선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연약함 때문에 더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우주 앞에서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직시하면서도, 각 존재가 가지는 소중함과 서로를 이어주는 공존과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예술적 시선을 통해 보여주며, 관람객이 자신의 이야기와 작품 속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도록 전개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를 향한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시간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공간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습니다. 각 전시실의 주제를 선정할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고민했나요?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서사는 거대한 우주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 존재의 소중함과, 결국 서로를 이어주는 사랑의 힘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 구성을 세 개로 나눠 관람객이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을 걸으며 작품과 이야기를 따라가고,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작품 속 서사와 연결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설치 작품이 많은데, 같은 작품이라도 작품이 놓여진 시간과 공간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들이 다른 곳도 아닌 지금 이 순간 한국의 포도뮤지엄에 모였는데, 그렇다면 관람객은 어떻게 작품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설치 작품은 놓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람객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관람객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자연, 시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해석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갑니다. 작품과 공간, 다른 작품,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맞물리면서 각자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작품이 전달하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공존, 사랑의 메시지를 다양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경험과 해석은, 전시가 지향하는 ‘작은 존재들의 연대와 공감’이라는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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