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17 15:44
‘숨’, ‘결’ 연작
4월 30일까지 리안갤러리



돌가루라는 재료의 수용성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절제된 의식을 통해 칠을 반복해 캔버스를 비움의 미학으로 가득 채워내는 김근태의 개인전이 4월 30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작가는 붓질을 수없이 거듭하며 자신을 비우고 나아가 화면까지도 비워내는데, 이 과정으로써 완성해낸 그림은 정작 호화로운 수식이나 장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작품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내면의 풍족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작가가 지움과 절제를 통해 궁극의 비움을 이뤄내 오히려 묵직하고 충만한 경지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조선백자의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자기의 흔적을 지워내는 동시에 재료의 속성을 존중하고 살리는 데 몰두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담론(Discussion)’ 이라는 주제로 연작을 이어오고 있으며, 돌가루와 러버(rubber)를 사용해 직접 제작한 석분 물감으로 도자의 표면을 닮은 ‘숨’ 연작, 유화물감에 코팅 미디엄을 불투명한 페이스트로 단단하고, 두껍게 덧칠한 ‘결’ 연작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세상의 과잉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바탕으로, ‘비움으로써 도달하는 근원과 궁극’을 탐구하며 선(禪) 세계에 깊게 몰입한다. 이러한 작가의 회화세계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과 과학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돌아가는 하나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도달할 수 없는 근원을 향한 몸짓과 같이 각 그림은 그 다음을 만들어내는 수단이자 명상이 되며, 동시에 오직 그리는 행위의 에너지에 몰입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담론Discussion’ 연작은 치밀한 연구와 기술적 혁신이 동반된 명상의 한 형태다. 작가는 경주 남산의 탑들과 도자기를 관찰한 후, 석분과 접착제를 물감과 혼합하여 분청사기의 질감을 구현하는 지금의 기술적 방법에 이르게 되었다. 각 작품은 평면의 캔버스를 채우는 붓놀림의 미묘한 차이와 섬세한 깊이로 구현된 변주와 화음을 통해 무한한 이미지로 그때 그때 탈바꿈한다. 구도(構圖)의 단순화와 기법의 복잡화로 이룩한 작가의 회화 발전은 관객을 근원의 개념과 강렬히 대화하도록 이끌며, 분과학문의 다양성과는 상관없이 조화를 이루며 해석적 순간을 창조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작가의 신작은 대표작 ‘숨’ 시리즈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토양색이 아닌, 우연적이고 자유로운 흑백색의 터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작가의 90년대 초 작업과 닮아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화업 안에서 쉼없이 돌고 돌며 결국엔 나아가는 작가 평생의 작업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