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F 프라이빗 노트] 11장 – 윤형근·박서보

입력 : 2025.03.11 11:40

‘ACF(Art Chosun Focus)’
국내외 동시대 참여 작가 27인 15회 연재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

‘ACF(Art Chosun Focus)’ 포스터. /아트조선
‘ACF(Art Chosun Focus)’ 포스터. /아트조선
 
※편집자주ART CHOSUN, TV CHOSUN 미디어 양사가 공동 주최하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프로젝트더스카이가 공동 기획한 ‘ACF(Art Chosun Focus)’가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에서 열린다.https://www.artchosunfocus.com/참여 작가는 27인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 선정돼 행사 기간 중 전시된다. 이에, 본지는 각 작품을 관람하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작가의 작업관을 요약해 설명한다. 해당 기사는 전시 시작 전까지 15회에 걸쳐 연재된다.
 
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 Blue, 1992
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 Blue, 1992
 
오묘한 흙빛, 이른바 ‘청다색(靑茶色)’으로 대표되는 윤형근(1928~2007)의 그림을 ACF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윤형근의 작품은 대담하면서도 절제미가 넘치며, 많은 컬렉터들이 실견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작가에게 땅은 물리적, 정신적, 예술적 대상으로서의 다중적인 대상이다. 자신이 딛고 서 있는 현재의 땅과 예기치 못한 죽음, 두 번째로는 종국에 모든 만물이 회귀하는 땅이자 미래의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서 현실의 자연과 자연을 닮은 자신의 그림을 의미한다.
 
윤형근, Umber-Blue, 1991
윤형근, Umber-Blue, 1991
윤형근의 작품 속 크게 그어진 필획은 무한한 깊이를 가져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하며 평평한 면이라는 것에 통합되어 있으며 배경과 경계는 물감의 번짐을 통해 흐려진다. 먹의 농담이 마포천에 느릿하게 스미듯 번져 나가며 관객과 서서히 전염되듯 소통된다.
 
윤형근은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찍어 내려 곧게 그은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한 작품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세계 유명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의 본점인 뉴욕에서 선보인 2017년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0년 2번째 개인전을 개최했고, 2023년에는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넘어가 데이비드 즈워너 파리 지점에서 3번째 개인전을 선보이며 현재 한국 대표 작가로 꼽힌다.
 
생전 '더 오리지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전시장에 방문한 박서보 화백. /아트조선
생전 '더 오리지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전시장에 방문한 박서보 화백. /아트조선
 
박서보(1931~2023). 이렇다 저렇다 할 수식이나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름 그 자체만으로 예술세계가 온전히 설명된다. 한국 미술 애호가 중에서 박서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박서보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선도한 작가로, 그의 대표작 ‘묘법(描法·Écriture)’ 시리즈를 통해 서양의 추상미술과 구분되는 단색화 고유의 특성과 개성을 국제 미술계에 소개하고 한국 미술이 해외무대의 중심에 안착할 수 있도록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박서보의 인기 시리즈 ‘컬러 묘법’은 자연으로부터 기인했다. 작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색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찾은 가을 산에서 불타오르는 듯 새빨간 단풍을 마주하고 그 아름다움에 탄복한 것이다. 박서보는 이를 화면에 그대로 옮겼는데, 보는 이에게 자연의 그것과도 같은 신비로움과 평온함을 전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는 공기색, 벚꽃색, 홍시색 등 자연으로부터 영감받아 명명한 빛깔이 온전히 나타난다.
 
박서보, Écriture (描法), 2007,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200×131cm
박서보, Écriture (描法), 2007,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200×131cm
 
또한 작품 앞에 가까이 다가서면 고랑처럼 표면이 입체적이고 질감이 도드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요 재료인 한지를 수없이 겹치고 이를 밀어내거나 긁길 거듭하며 화면 위에 자연스레 고랑이 형성된 것이다.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며 견고하게 보인다. 그만큼 그의 작품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작업 과정과 오랜 시간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작가는 구순을 앞둔 몇 년 전, 자기 말마따나 다시 한 번 변화했다. 2023년 작고 전까지도 지팡이를 짚고 발을 끌면서 연필 한 자루를 쥐고 홀로 이젤 앞에 서길 택했다. 그림이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지만 작가의 신체조건에 따라서도 변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