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몸의 언어로 쓴 세계의 기록… ‘모나 하툼’展

입력 : 2025.03.07 16:04

모나 하툼 개인전
4월 12일까지 신사동 화이트 큐브 서울

'Round and round' 디테일 컷. /화이트 큐브
'Round and round' 디테일 컷. /화이트 큐브
 
모나 하툼(Mona Hatoum·73)의 아버지는 1948년, 영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중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피해 레바논으로 이주한다. 이후 1952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하툼이 태어나게 된다. 1975년에는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며 베이루트 공항이 폐쇄됐는데, 마침 런던으로 휴가를 떠나있던 하툼은 이를 계기로 런던으로 이주한다.
 
하툼의 일생에는 전쟁이 기저에 깔려있다. 어떤 삶을 살든 모든 주체는 사회·정치적 배경에 의해 외부적 조건으로 다시 규정된다. 하툼은 이러한 타자성을 작품에 녹여낸다. 이 타자성의 실현에는 여성이자 인간인 하툼의 신체적 성질이 동반되는데, 이는 매혹적이면서도 거부감을 들게 하는 하툼 작업의 주요 특성이 된다. 하툼은 머리카락을 이용해 목걸이를 만들거나, 공을 만들어 전시장 바닥에 자유롭게 배치하는 등의 신체적·장소특정적 작업을 선보여 왔다.
 
‘무제(휠체어 II)’ 디테일컷. /화이트 큐브
‘무제(휠체어 II)’ 디테일컷. /화이트 큐브
 
작가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무제(휠체어 II)’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휠체어를 변형한 작업으로, 손잡이 대신 날카로운 톱날이 장착돼 있다. 보살핌의 상징인 휠체어는 위협적인 오브제로 탈바꿈돼, 보호와 위협이 공존하는 긴장을 형상화한다.
 
정물(의약품 캐비닛) VI, 2025, Hand-blown glass, steel and glass cabinet, 73.5x61x34.5cm. /화이트 큐브
정물(의약품 캐비닛) VI, 2025, Hand-blown glass, steel and glass cabinet, 73.5x61x34.5cm. /화이트 큐브
분리, 2025, three panel screen and barbed wire, 172x188x48cm. /화이트 큐브
분리, 2025, three panel screen and barbed wire, 172x188x48cm. /화이트 큐브
 
하툼이 일평생 경험한 전쟁에 대한 배경 역시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신작 ‘분리’는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칸막이 형태의 프레임에 천 대신 철조망을 둘러 분단을 상징한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정물(의약품 캐비닛) VI’은 다채로운 색의 유리로 제작된 수류탄을 진열한 작품이다. 의약품 캐비닛이라는 구조 안에 상반된 성질을 가진 수류탄이 배치돼 대조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치유와 파괴, 보호와 위협이라는 모순된 요소가 공존한다.
 
하툼은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레바논 내전을 경험했지만 단순히 팔레스타인·레바논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툼의 작업은 무국적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적 담론은 전쟁이 만연한 현재, 세계 어디에서나 유효하며, 무엇보다 정치·사회적 상황을 경유해 작가 주체에 대한 탐구로 되돌아온다는 점 때문이다.
 
모나 하툼 개인전 전시 전경. /화이트 큐브
모나 하툼 개인전 전시 전경. /화이트 큐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나 하툼 작가의 모습(왼쪽). /화이트 큐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나 하툼 작가의 모습(왼쪽). /화이트 큐브
 
이러한 모나 하툼의 국내 첫 개인전이 4월 12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관습과 통념을 과감히 깨 온 작가의 1999년부터 최근의 예술적 탐구를 조명하며,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한 주요 작품 20여 점을 공개한다.
 
모나 하툼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대표적으로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 런던의 테이트 모던, 베이징의 울렌스 현대미술센터 그리고 2017년 제10회 히로시마 예술상 수상을 기념하여 일본 히로시마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올해 예정된 주요 프로젝트로는 네덜란드 쿤스탈 카데(2월부터 5월까지)의 개인전, 영국 터너 컨템퍼러리의 ‘핫스팟’(Hot Spot) 전시(2월부터 4월까지) 그리고 모나 하툼과 스위스의 전설적인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기획으로 런던 바비칸에서 개최될 ‘엔카운터: 자코메티’전(9월부터 내년 1월까지) 등이 있다. 또한 시칠리아 오라니에 위치한 니볼라 미술관 레지던시에 참여할 예정이며, 이를 바탕으로 2025년 10월 초에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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