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미술(1) - 등(背): 신체의 여집합

입력 : 2025.03.04 15:14
등의 표면 해부학. /Atlas of human anatomy, ed 6, Plate 152.
등의 표면 해부학. /Atlas of human anatomy, ed 6, Plate 152.
 
등의 해부학적 정의는 모호하다. 위로는 어깨, 양옆으로는 옆구리, 아래로는 골반과 엉덩이와 접해있지만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등의 국경에는 영토 분쟁이 없다. 인접한 어깨, 옆구리, 골반은 물론 다른 어떤 신체 부위도 탐내지 않는 황무지이기 때문이다.
 
등은 시각이 닿지 않기에 급습과 약점의 상징이 된다.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불사의 영웅들이 등에 치명상을 입고 죽는다.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휘젓는 주인공 지크프리트는 불사의 영웅이지만 등에 약점이 있다. 이를 알아챈 배신자 하겐은 영웅이 냇가에서 물을 마시던 틈을 타 그의 등을 창으로 꿰뚫어 죽인다. 
 
 
등의 한자어 ‘배(背)’는 등 ‘배’ 이자 배반할 ‘배’다. 조직폭력배들이 용과 호랑이를 등에 문신으로 새겨 놓는 것도 매한가지 이유다. 언제 배신자의 칼이 등에 꽂힐지 모르는 뒷골목의 짐승들이다. 그들이 등에 새겨 놓은 용의 눈, 호랑이의 눈은 시각의 어두운 사각지대에 설치한 무시무시한 CCTV일 것이다. 언젠가는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부조리다. 내 등에 꽂힐 화살이 어디선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 내가 내 등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창가의 여인, 1822,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위키피디아
창가의 여인, 1822,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위키피디아
뒤돌아선 젊은 여인이 있는 실내, 1904,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위키피디아
뒤돌아선 젊은 여인이 있는 실내, 1904,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위키피디아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등만 보고는 그 사람을 봤다고 말하지 않는다. 등에는 표정이 없으며 황무지는 이름이 없다. 등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에서조차 감상자의 시선은 등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늘 등에 인색했던 감상의 시선은 그림 속 인물의 등을 관통해 그려지지 않는 소실점을 쫓는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위키피디아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위키피디아
 
등을 그린 그림에서조차 등은 소외된다. 신체의 눈 밖에 난 뒤판에 애틋한 무게가 얹힌다. 문학의 수사는 타인의 등에서 그 짐을 포착한다. 세파의 중량에 좁아진 아버지의 등, 세월의 중력에 굽어진 할머니의 등. 질병의 무게에 뒤틀린 장애인의 등. 문학의 등은 자꾸 작아지고 또 사라지려고 한다.
 
황무지, 맹점, 무표정, 약점 그리고 짐. 신체의 여집합인 등에 꽂힌 원소들이다. 이것을 털어내려면 등은 발가벗어야 한다. 에드가 드가와 에곤 실레가 등을 전복한다. 
 
목욕통의 여인, 1886,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위키피디아
목욕통의 여인, 1886,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위키피디아
목욕통, 1886,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위키피디아
목욕통, 1886,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위키피디아
 
에드가 드가의 벌거벗은 등에는 속살의 수줍음이 물결친다.목욕통 바닥엔 물 대신 반사된 나부의 몸이 찰랑이고, 그 위로 등이 표정진 얼굴과 소리치는 가슴 그리고 은밀한 골반을 감싼다. 통 밖의 천들과 바닥의 파스텔이 굽이쳐 들어오면서 등은 비옥한 물결이 된다. 드가는 나부의 등으로 고요한 수면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부린 자세지만 등 중앙의 척추 극상 돌기(Spinous Processes of Vertebra)는 수면 아래로 잠겨있다. 이렇게 황무지가 사라지고 드가의 등은 수역(水域)을 갖는다.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Galerie St. Etienne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Kallir Research Institute, New York
등을 보인 남성의 누드,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Courtesy of Kallir Research Institute, New York
 
에곤 실레의 벌거벗은 등은 압도적이다. 거칠고 각진 등은 확고한 영토를 점령한 제국이다. 실레의 등은 감상자의 시선이 다른 신체에 꽂히는 걸 허하지 않는 폭군이다. 표정도, 감정도 없는 등이 관람객의 눈을 노려본다. 울긋불긋한 등은 너무 적나라해서 숨길 것이 전혀 없다. 핏빛의 척추 극상 돌기와 서슬 퍼런 척추 기립근이 배신을 용납지 않기에 맹점도 약점도 없다. 실레는 신체의 모든 기관을 등의 여집합으로 만들어 버린다.
등은 보이지 않기에 속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등이 표정을 짓는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드가와 실레는 등에 감각을 넣어 소외를 직시한다. 순간, 등은 모든 신체 부위를 자신의 여집합으로 만든다. 소외된 것은 등이라는 신체 부위가 아니라, 등을 가진 인간이다. 등이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등은 오직 자신만 볼 수 없는 소외일지도 모른다.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 총체극단 '여집합' 단장.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기획 및 연출을, 여러 극단에서 극작과 연출을 맡고 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철학으로 유리알 유희를 하며 여러 유형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클락헨'(2020), 기록문학 '그 의사의 코로나'(2022), 소설 '악의 유전학'(2023)을 출간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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