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2.20 17:33
●전시명: 'PAINTED FOREST'●기간: 2024. 12. 18 ─ 12. 31●장소: 갤러리도스(삼청로7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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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동식물이 모여 사는 숲에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해가 뜨고 지면서 자연스럽게 비추어 들어오는 자연광은 숲속 풍경과 어우러지며 근사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거대하고 울창한 이파리를 지닌 나무를 보면 언제부터 심어져 자라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그런 나무들이 모이면 각각의 가지가 한데 마주치며 새로운 교집합을 구성하면서 어느 쪽이 근본이고 어디가 말단인지 분간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시각적 형상이 모호해지고 점차 눈에 보이는 것과 스스로 이미 알아 왔던 것에 대한 간극이 발생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은 가지와 이파리, 뿌리에 내려앉을 때 저마다 다른 조화를 이루며 자연물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자아낸다. 임호섭 작가는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응시할 때 대입하는 무의식적인 사전 정보와 실재 현상 속 차이에 주목하여 작품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육안으로 접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눈에 비추어지지 않는 것을 작업의 과정으로 착수한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바탕재를 굳이 사양하고 투박한 표면을 의도한 부분은 안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반영하고자 함이다. 숲과 나무를 조성하는 요소들은 예측할 수 없는 기복을 띠며 눈앞의 화면을 추상과 반추상의 장르로 변모하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순간이 모여 작품의 폭넓은 경계를 만들고 선명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불확실한 상(象)의 혼합적 측면을 구축한다. 작가는 격자무늬의 실을 제작하여 화폭 위에 덧대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실은 추후 완성될 구상적 형태가 덧대어지는 표면으로 활용되고 물감층이 쌓이면서 자체적으로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모호한 각도를 명확하게 잡아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초기 작업이 끝나면 실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칠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캔버스는 매우 러프한 물성을 띠게 된다. 숲의 모습은 물감을 제대로 얹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서 눈으로 확연히 나타나는 빛깔과 채도를 택하여 비로소 진행된다. 무수한 잎사귀들에 가려지고 감춰지며 그 속에서 노출되는 가지는 기존에 알고 있던 일반적인 형태에서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지속적으로 전이한다. 작가는 사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뚜렷한 프레임과 그 이면의 사각지대에서 멈추지 않고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직접 관찰한 숲의 사색을 통해 이해한다. 나아가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정의를 다시 되새기면서 이러한 일이 서로 다른 특성으로부터 피어나는 모순의 양상임을 인지한다. 작가는 스스로 파악한 물리적 현상을 실의 울퉁불퉁한 요철과 칠을 하는 실천적 행위로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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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서 격자가 만들어내는 칸은 거대한 화면을 점증적으로 채우는 독립적 모습이 되는 동시에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가 된다. 부분으로 시작되는 표현은 연장선상에 놓이며 부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주어진 면적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틀 하나하나를 거쳐 끝나지 않는 서사를 잇는다. 작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대상 너머의 풍경을 연상하고 관념하면서 고유의 시각적 사고를 작품으로 연결한다. 짧은 시간에 빠른 완성이 가능한 효율적 방식이 아닌 인고의 과정으로 탄생한 작품은 결코 가볍게 판단할 수 없다. 이미지의 단편성을 초월한 화폭은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함축한다. 아울러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숲을 대하는 자세와 깊이 있는 사색의 탐구로 인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통찰한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고 작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물성의 감각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