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도 노벨상 있다면… ‘넥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는?

입력 : 2024.11.19 17:44

지난달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 동시대 작가
이불·양혜규·서도호 해외서 전시

/스웨덴 한림원
/스웨덴 한림원
 
지난달, 국내 전역이 들썩일 소식이 스웨덴 한림원에서 발표됐다. 소설가이자 시인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한강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간 한국문학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고은(91)·김훈(76)·황석영(81) 등이 후보로 꼽혔다. 고은은 문학계 미투운동에서 가해자로 지적된 바 있으나, 해당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작가였다. 또한 김훈과 황석영 역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번역된 작품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며 한국문학을 알렸다. 이처럼 국내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던 작가는 오랜 집필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더욱 각별하다. 최근 한국문학은 힘을 잃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TOP10’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만큼 대중의 시야 밖에 있었다. 한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윗세대 외에는 굵직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이른바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이 없었다.
 
/스웨덴 한림원
/스웨덴 한림원
 
미술계 역시 1970년대 처음 등장한 뒤 현재까지 국제적 관심을 받아 온 ‘단색화’ 이후의 미술 사조를 이끌 새로운 작가를 찾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단색화는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보고 배우며 직접 습득한 서구적인 화풍과 동양 철학의 수행적인 움직임이 공존한다. 특히 단색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고(故) 박서보 화백은 서양 미술의 전개 양상을 지배하는 내적 논리는 과거 미술을 뒤집고 선례의 규칙을 파괴하여 새로운 미술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런 이해 아래 서양 미술과는 다른 한국 작가들만의 작업 태도와 철학을 발견하게 됐고, 드러내기보다는 덜어내는, 미니멀하면서도 반복적인 리듬감을 형성하는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또한 이우환, 하종현, 윤형근 등 굵직한 작가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단색화를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했다.
 
옥션에 출품된 한국 기반의 작가를 보면 아직까지는 단색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 진출한 여러 해외 갤러리가 새로운 한국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려는 움직임을 갖는다. 몇몇 작가는 해외 미술관을 비롯한 기관에서 전시를 갖고 세계적인 시선을 이끌고 있다. 만약 미술계에도 노벨상이 있다면, 다음 세대의 어떤 작가가 수상할 수 있을까?
 
Lee Bul, Performance Still, Sorry For Suffering-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1990, 12-Day Performance, Gimpo Airport, Narita Airport, Downtown Tokyo, Dokiwaza Theater, Tokyo. /BB&M
Lee Bul, Performance Still, Sorry For Suffering-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1990, 12-Day Performance, Gimpo Airport, Narita Airport, Downtown Tokyo, Dokiwaza Theater, Tokyo. /BB&M
Lee Bul, Civitas Solis II, 2014, Installation View. /국립현대미술관
Lee Bul, Civitas Solis II, 2014, Installation View. /국립현대미술관
이불 작가 프로필 사진. /BB&M
이불 작가 프로필 사진. /BB&M
  
한 작가가 미술관에서 반짝이를 바른 생선을 썩혔다. 악취가 너무 심해 전시 중간에 작품을 철수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일본에서는 정체불명의 팔과 다리가 주렁주렁 달린 인형 옷을 입고 지하철역, 대학교, 극장, 공항을 배회하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에너지와 그 안을 꿰뚫는 여성과 몸에 대한 통찰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불(60)의 이야기다.
 
설치, 평면, 퍼포먼스 등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불은 뉴뮤지엄(뉴욕, 2002), 호주 현대 미술관(시드니, 2004),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파리, 2007), 모리 미술관(도쿄, 2012), 팔레 드 도쿄(파리, 2015), 헤이워드 갤러리(런던, 2018),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베를린, 2018) 등 세계적인 주요 미술관에서 연이은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파사드 커미션’에 선정돼 미술관 외벽에 작품을 설치해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내년 5월 27일까지 이어진다.
 
Haegue Yang, YES-I-KNOW-SCREEN, 2007, Wooden screens, paint, metal connectors, metal feet
10 pieces, each 200x80cm. /국제갤러리
Haegue Yang, YES-I-KNOW-SCREEN, 2007, Wooden screens, paint, metal connectors, metal feet 10 pieces, each 200x80cm. /국제갤러리
Cittadella, 2011,
Aluminum Venetian blinds, aluminum hanging structure, powder coating, steel wire, moving spotlights, scent emitters (Campfire, Mountain Mist, Oudh, Rainforest, Cedarwood, Ocean, Fresh Cut Grass, Tamboti Wood)
Dimensions variable. /국제갤러리
Cittadella, 2011, Aluminum Venetian blinds, aluminum hanging structure, powder coating, steel wire, moving spotlights, scent emitters (Campfire, Mountain Mist, Oudh, Rainforest, Cedarwood, Ocean, Fresh Cut Grass, Tamboti Wood) Dimensions variable. /국제갤러리
양혜규 작가 프로필 사진. /국제갤러리
양혜규 작가 프로필 사진. /국제갤러리
 
한국 동시대 작가 중 빼놓을 수 없는 양혜규(53)는 1월 5일까지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 '윤년(Leap Year)'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199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 120여 점을 총망라해 5개 전시관에 걸쳐 선보인다.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커미션 신작 3점도 최초로 공개된다. 또 일찍이 독일로 이주한 양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 열었던 개인전 '사동 30번지'(2006)는 18년 만에 재현돼 다시 관객을 맞는다.
 
한편, 양혜규는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독일 경제지 ‘캐피탈’이 선정한 생존 100대 작가에 올랐다. ‘캐피탈’은 매년 11월 명단을 발표한다. 1위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이후로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로즈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 신디 셔먼(Cindy Sherman) 등이 뒤를 이었다. 양혜규는 93위를 차지했다.
 
Do Ho Suh,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
Do Ho Suh,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
Do Ho Suh, Bridging Home, 2010 Mixed media outdoor installation New commission. /Liverpool Bienniale
Do Ho Suh, Bridging Home, 2010 Mixed media outdoor installation New commission. /Liverpool Bienniale
서도호 작가 프로필 사진. /아트선재센터
서도호 작가 프로필 사진. /아트선재센터
 
몇 해 전 SNS 온라인상에서 한 설치 작품이 화제가 됐다. 그 작품을 본 사람들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방인의 외로움과 집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작품 하나로 온라인상의 수만, 어쩌면 수십만 명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서도호(62)의 ‘Bridging Home’(2010)이다. 서양식 집과 집 사이에 기울어진 각도로 힘겹게 끼어있는 한옥의 형상이 보인다. 이는 낯선 이국땅에서 힘겹게 발을 붙이고 살아가려는 이방인의 정서를 표현한다.
 
서도호는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의 개인전으로 112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본 전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서도호는 자신과 연관된 공간을 재구성하는 장소 특정적 미술의 이동 가능성을 선보인다.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문화의 이동과 차이 그리고 충돌을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공동체적인 기억으로 확장한다. 내년 5월에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불, 양혜규, 서도호 외에도 여러 작가가 단색화 이후 ‘넥스트 제너레이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위상이 달라졌다. 칼리 맥컬러스키(Carly McCloskey) 뉴욕현대미술관 마케팅 부국장은 “한국이 아시아 시장 중 1등이다. 세계로 넓혀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주요한 시장으로 평가받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비단 단색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여러 동시대 작가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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