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8.23 15:22
미공개 신작 최초 공개
오세열 개인전 ‘5310: 난 자리에 드는 무심한 위로’
9월 28일까지 갤러리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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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6… 화면에 숫자가 가득하다. 어떤 숫자는 물감 위에 붓으로 그렸지만, 어떤 숫자는 물감을 거칠게 긁어 표시했다. 숫자가 이어지던 중, 뜬금없이 초코파이나 스푼이 등장하며 맥락을 끊기도 한다. 콜라주 형태로 이미지를 오려 붙이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한 캔버스에 칼이나 송곳처럼 날카로운 도구로 숫자를 새기며 “내 몸을 베어내는 것 같다”라고 말한 작가가 의도한 일종의 위트다. 삶이란 항상 아픈 것만도 아니고, 항상 웃음이 가득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표현한다.
전시장 바닥엔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유년 시절에 한 번쯤 해봤을 ‘땅따먹기’ 놀이가 그려져 있다. 작가는 “숫자는 어린아이가 문자보다 먼저 배우고 그리는 기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숫자 낙서가 마냥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광복이 된 해에 태어나 유년 시절 한국전쟁을 겪은 작가는 숫자를 통해 동심과 비극적인 과거를 동시에 표현했다. 전시장 바닥에 그려진 ‘땅따먹기’ 놀이 역시 아련하고도 애틋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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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전쟁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서부터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시대의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는 작가 오세열(79)의 개인전 ‘5310: 난 자리에 드는 무심한 위로’가 9월 28일까지 논현동 갤러리X2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미공개 신작을 선보이고, ACS(아트조선스페이스)가 공동주최로 참여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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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국내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은 오세열은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화 물감의 화려한 기름기를 짜내고 피폐화한 뒤, 날카로운 도구로 캔버스를 긁어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숫자 자체에 색을 입힌 작품과 비교적 작은 크기의 소품이 최초로 내걸린다.
작가의 작품은 장애를 가진 인물과 버려진 소재를 활용해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의미 없는 것에서 특별함을 찾아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가의 숙명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것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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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가오는 ‘키아프리즈’ 기간에 맞춰 9월 5일에 X2나잇을 개최한다. 칵테일과 디제잉 파티와 함께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1부 행사에서는 작가 오세열을 직접 만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는 2부 행사에서는 칵테일 리셉션과 디제잉 파티가 진행된다.
오세열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서 석사 수료를 했다. 이후 중앙대학교와 목원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교토, 파리, 런던, LA, 서울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가졌다. 작가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