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의 흥얼거림: 색이 빛깔 될 때

입력 : 2024.04.30 11:39

김홍주·나비드 누르·디아나 체플라누·이영림 그룹전 ‘The Humming of Colors’
‘김홍주’·‘디아나 체플라누’
5월 10일부터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전시 ‘The Humming of Colors’를 앞두고 참여 작가 4인 중 2인을 묶어 2편에 걸쳐 다룬다. 이번 기사에서는 김홍주와 디아나 체플라누를 소개한다.
 
김홍주,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2×160cm. /아트조선
김홍주,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2×160cm. /아트조선
디아나 체플라누, Lemon at the Window, 1994, oil on canvas, 64.5×49cm.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 Lemon at the Window, 1994, oil on canvas, 64.5×49cm. /작가 제공
 
우리 주변의 색은 ‘인디언 옐로’, ‘코발트블루’ 등의 이름으로 규정되거나 R71, G200, B62처럼 수치를 지닌 RGB 색상표로 정의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색의 종류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색은 질감, 밀도 등에 의해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궁무진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캔버스 앞의 작가는 색과 색을 섞으며 자신도 몰랐던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레드’와 ‘이 레드’ 중간 어딘가’처럼 기존의 문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공허한 새벽하늘’처럼 말로 길게 설명해도 쉽게 와닿지 않는 풍경을 색 하나로 단번에 표현해 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색은 무한한 세계를 담고 있다.
 
색을 주제로 김홍주(79)·나비드 누르(Navid Nuur·48)·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67)·이영림(55) 4인의 전시 ‘The Humming of Colors’가 5월 10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 타이틀은 색과 색이 만나 조응하는 감각에 주목하고 시각적, 지각적 개념을 물질화하는 색에 대해 탐구한다. 세필, 마블링, 자연, 공간과의 상호작용까지. 제각기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네 명의 작가가 표현하는 ‘색의 허밍’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작품이 내걸린다.
 
Diana Cepleanu, Weed, 2013, oil on canvas, 97.3×15.4cm. /작가 제공
Diana Cepleanu, Weed, 2013, oil on canvas, 97.3×15.4cm. /작가 제공
 
색은 회화를 이루는 기본 요소 중 하나다. 동시에 작가의 개성을 전달하기 좋은 요소이기도 하다. 전시 기획을 맡은 케이트 림(Kate Lim)은 “이번 전시는 관객들로 하여금 섬세하고 공들여 구현된 색상의 공명을 관찰하고, 예술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풍부한 감각을 즐길 수 있도록 의도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앞둔 국내외 참여 작가 4인 중 먼저 김홍주·디아나 체플라누와 작품에 대한 대화를 각각 나눴다. 나비드 누르와 이영림은 두 번째 기사.
 
작업실에서 인터뷰 하는 김홍주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작업실에서 인터뷰 하는 김홍주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 작가의 모습.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 작가의 모습. /작가 제공
 
─아트조선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The Humming of Colors’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시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김홍주 사실 별 소감은 없어요(웃음). 전시는 기획자와 관람객이 상호작용하지, 작가는 하는 게 없어요. 같은 작가,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기획자가 맡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고 봐요. 기획자들은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공부하고, 해석한 결과를 전시에 내놓죠.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 역시 기획자가 꺼내놓은 다양한 시선을 좇으며 작품을 관람해 보면 좋겠습니다.

디아나 체플라누 저는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동아시아의 미술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2011년과 2013년, 한국의 그림책 축제에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다시 한국과 연결돼 기쁩니다.
 
─색채는 그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 중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작가님의 작품 안에서 색은 어떤 역할을 가지나요?

김홍주 사실 색을 의식하면서 작품을 그리지는 않아요. 어떤 색이든 그리고, 또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어느 한 가지 색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색을 만드는 것 같네요. 같은 녹색처럼 보여도 사실은 다 다른 녹색을 수없이 겹쳐 그리기도 하고요. 색이 어떤 역할을 가진다기보다는 그저 화면 안에 존재할 뿐이죠. 그저 그리기에 집중할 뿐입니다.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고요.

디아나 체플라누 색은 작품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한 가지 색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두 가지, 세 가지 색상, 또는 그 색과 색의 관계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그 후, 색은 인물과 사물이 표면적으로 정의되는 것 이면의 무언가를 드러냅니다. 새로운 감각의 일종이라고 할까요.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런 것. 색은 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색채의 대화에서 작품 자체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김홍주 작가 작업실. 다양한 색의 물감이 놓여있다. /아트조선
김홍주 작가 작업실. 다양한 색의 물감이 놓여있다. /아트조선
벽에 걸린 작품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색감을 빛내고 있다. /아트조선
벽에 걸린 작품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색감을 빛내고 있다. /아트조선
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 작가가 자연의 재료를 나열한 모습.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Diana Cepleanu) 작가가 자연의 재료를 나열한 모습. /작가 제공
김홍주 작가 작업실 한 쪽 벽면에 자연에서 수집한 소재가 걸려있는 모습. /아트조선
김홍주 작가 작업실 한 쪽 벽면에 자연에서 수집한 소재가 걸려있는 모습. /아트조선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기준에 따라 색을 선택하시나요?

김홍주 아까도 말했듯이, 각 색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요. 말하자면 ‘작위’가 없습니다. 색뿐만 아니라 다른 회화 요소도 마찬가지고요. 꾸며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레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양이나, 묽은 물감이 만들어내는 형상 같은 요소를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내 의도가 들어간 흔적을 보여주기보다는 작품이 있는 그대로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게 됐습니다. 작품명이 ‘무제’인 것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관람객은 그 이름과 작품을 연결하는 데만 노력을 기울여요. 그러나 사실 관점이라는 건 다양한 거고, 저마다의 생각과 의견을 모두 존중하기 때문에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습니다.

디아나 체플라누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선호하는 색이 생기고, 더 많이 사용하는 색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에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색 자체보다는 색과 색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스펙트럼으로 정의된 색 이외에 또 다른 색이 존재할 수 있을까 궁금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 색에 대해 ‘사이의 색’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뭐라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죠. 저는 물감에서 짜낸 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혼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또는 자연에서 얻은 안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흙, 나뭇잎 같은 것을요.
 
디아나 체플라누, Cabbage, 1994, oil on canvas, 33×33.1cm(front).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 Cabbage, 1994, oil on canvas, 33×33.1cm(front).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 Cabbage, 1994, oil on canvas, 33×33.1cm(back). /작가 제공
디아나 체플라누, Cabbage, 1994, oil on canvas, 33×33.1cm(back). /작가 제공
 
─지난 여러 해 동안 작업을 이어오며 여러 변화를 겪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김홍주 세필을 그린다는 점은 변함이 없죠. 유화나 아크릴이나 또 다른 많은 재료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리는데 결국 얇은 선을 수없이 쌓아 형태를 완성하는 작업에는 변함이 없어요. 한 올 한 올 계속해서 쌓아 올리기 때문에 작업이 오래 걸리기도 해요. 그럼에도 세필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디아나 체플라누 제 작품은 자연주의적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탄생합니다. 이 두 가지를 화면 안에 배치하고 공존할 수 있게 의도합니다.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인 학창 시절에 이 주제에 대해 공책에 기록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관심사는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김홍주,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2×160cm. /아트조선
김홍주,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2×160cm. /아트조선
작업실 전경 사진. /아트조선
작업실 전경 사진. /아트조선
작업실 전경 사진. /아트조선
작업실 전경 사진. /아트조선
 
─김홍주 선생님께서는 비단, 한지, 캔버스 등 다양한 소재 위에 작품을 그려내십니다. 때문에 보는 이들은 미묘한 변주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다양한 소재 위에 작품을 그려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홍주 세필 특성상 선의 집합으로 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백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배경이 중요해요. 배경에 색이 칠해져 있다면 선의 형상이 잘 보이지 않을 겁니다. 배경을 채색하는 대신 바탕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재료의 성격과 그림을 함께 고려하고 조합해요. 한마디로 그림이 올려지는 오브제도 당연하지만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문의 (02)736-7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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