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22 10:34
개인전, 3월 16일까지 웅갤러리
대표 연작 ‘Montagne(산)’ 신작 20여 점 소개

장광범은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에콜 데 보자르의 떨어져 나간 오래된 벽의 마모된 흔적에서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인 벽 칠의 단면을 발견함으로써 시간의 형상을 가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한다. 이후 작가는 시간과 같은 자연의 비가시적 요소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시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후 그라인더로 표면을 갈아내고 물감의 층위를 드러내며 이렇게 쌓아 올려진 물감의 층과 결은 시간의 축적을 암시한다.
장광범 개인전 ‘공명, résonance’이 3월 16일까지 서울 홍지동 웅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의 대표 연작 ‘Montagne(산)’ 신작 20여 점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전시명 ‘공명’은 장광범의 ‘Montagne’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설명하는 단어로, 산의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 아닌, 시간의 축적된 모습이 솟아오르는 산과 같은 형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 바 있다. 시간의 형상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 융기화(솟아오름)된 추상적 모양으로 그려진 것. 작품에 나타난 산, 물, 불의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하는 유동적인 형상, 대상 안에서 흐르고 움직이는 시간의 형상과 같다.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는 전시 서문에서 작가의 ‘Montagne’ 앞에 섰을 때의 경험할 수 있는 공명을 두 가지 맥락으로 짚는다. 우선 작품을 보는 개인의 과거 경험과 현재에서 발생하는 공명이다. 이 학예사는 “지금 내 앞에는 작품이 있고, 웅장한 산의 형상을 보는 감각적이고 지각에 근거한 경험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은 무엇인가. 과거에 산과 관련된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거의 경험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 피어오른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의 행위에 동반하는 수행성으로부터 오는 공명을 설명한다. “작가는 한번 물감을 올리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색을 바꿔 또 물감을 쌓는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물감의 레이어가 완성된 다음에 작가는 그라인더를 들어 미세하게 그 표면을 갈아내고 물감의 층위를 드러내는 한편 추상적인 형태를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붓을 들어 산줄기와 나무를 그리는 행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수묵으로 그린 오래된 산수화 앞에 선 것처럼 여러 겹의 시간의 층위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작가의 수행성 덕분에 우리는 여러 차례 다른 색의 물감을 쌓아 올리는 반복적인 작업의 방식에서 기약 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고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는 삶의 경험까지 끄집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