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15 10:02
제23회 송은미술대상에 유화수 선정
작가 20명 신작 한자리에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어우러져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정면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황문정(34)의 ‘송은미술대상전을 위한 표본’이다. 2021년 리뉴얼한 송은 신사옥을 본뜬 모형을 분해하고 재정립한 것으로, 공간 안의 인간과 비인간이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관계성에 주목한다. 그 후 리셉션 데스크가 시선에 들어온다. 감각적인 공간과 동시대를 반영한 여러 작가의 작품이 경계 없이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바로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이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중간에 영상 작품 ‘LUCA’가 있다. 정서희(37)의 작품으로,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이라는 가상의 설정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를 매개로 신화적인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는 비디오게임 형식 다큐멘터리다. 관람객은 자연스레 계단과 이어진 스탠드에 앉아 자리에 마련된 헤드폰을 착용하며 작품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위층에는 남진우(39), 이우성(41), 이세준(40)의 대형 회화 작품과 전장연(42)의 설치 작품이 있다.
전시장 가벽과 통유리창 사이 통로 공간에도 작품이 전시된다. 이곳에는 자연을 주제로 한 문이삭(38)의 ‘Bust-바람길’과 박형진(38)의 ‘호두나무’가 통유리창 너머의 풍경과 마주 보고 있다. ‘Bust-바람길’은 사물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상상하며 소조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호두나무’는 일상의 풍경을 수행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회화의 어법으로 재구축한 작품이다.




3층에는 영상을 비롯해 설치, 회화 등 다양한 작품이 내걸린다. 특히 눈여겨볼 작품은 이은영(42)의 ‘유령의 나이’다. 작품은 매우 복합적인 형태로 이뤄져 있는데, 우선 천 드로잉에 꿰져있는 밧줄이 당겨지며 천 위에 주름을 만들고 있다. 이는 축약되거나 삭제된 서사를 상징하고, 주름과 접힘을 자세히 보는 관람객의 행위는 결국 사라지고 잊혀진 서사를 상기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름을 형성한 뒤 늘어진 밧줄은 새와 연결되며, 마치 새가 줄을 당기는 듯한 형상을 띤다. 밧줄의 가장 끝에 위치한 새는 흙으로 뒤덮여 있다. 이 흙은 작가가 젖은 상태로 오브제에 덮어씌운 것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이 건조되면서 균열을 일으키고 마침내는 전시장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기까지 한다. 전시 초반에 방문한 관람객은 비교적 균일하게 새를 감싸고 있는 흙을 볼 수 있고, 전시 후반에 방문한 관람객은 흙이 마르면서 떨어져 나간 결과물을 보게 된다. 이 또한 감상을 다채롭게 하는 포인트다.

3층 벽면에 자리 잡은 대형 회화 작품은 장파(43)의 ‘여성/형상:할망’이다. 이 작품은 단군 이전의 창세 신화인 ‘마고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단군 등장 이후 ‘마고 신화’는 남성의 권위에 의해 기괴하게 변형됐다. 창조의 신에서 산신으로 전락했고, 우스꽝스러운 거인 할머니의 이미지로 희화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작가는 퇴락 전 마고 할미의 본모습을 상상하며 관습적으로 다뤄온 여성의 모습을 탈피한다.
3층의 전시를 모두 둘러봤다면 지하 2층으로 이동한다. 지상층의 하얗고 밝은 분위기와는 상반된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한 전시장의 무게감 있는 분위기가 공간을 채운다. 또한 압도적인 공간감과 층고가 작품을 담아낸다. 이쯤에서 관람객은 궁금증을 가지기도 한다. 작품의 전시 공간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 송은에서는 20인의 작가에게 각자가 희망하는 공간을 3지망까지 미리 받아 되도록 원하는 공간에 자신의 작품을 걸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니까, 전시장 구성과 작품 위치는 작가들이 직접 정한 셈.



지하 2층에서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의 대상 수상작인 유화수(45)의 ‘재배의 몸짓’을 만나볼 수 있다. 유화수는 그간 기술의 환경과 개인, 기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현상에 집중해 왔다. 이번 출품작 역시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거된 주거단지의 나무를 소재로 삼았다. 전시장 벽면에 위치한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벽면에 매달려 있는 나무를 떨게 한다. 동시에 작은 기계음도 동반되는데, 어두운 조도와 회색 콘크리트로 이뤄진 전시장의 분위기와 맞물려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작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식용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팜의 의미를 전복해 되려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비식용 버섯을 돌보는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송은미술대상은 45세 이하 한국 작가를 대상으로 하며, 예선 심사를 거쳐 20인의 작가를 선정해 본선 심사 전시를 연다. 본선에서 선정된 대상 수상 작가 1명에게는 상금 2000만원을 수여하고 2년 이내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를 지원하며, 송은문화재단과 까르띠에의 후원으로 대상 수상자의 작품 총 2점을 매입한다. 매입한 작품은 송은문화재단과 서울시립미술관에 각 한 점씩 소장된다. 이번 전시는 2월 24일까지 청담동 송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