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11 17:23
2월 17일까지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물의 초상’ ‘대지의 몽상’ ‘흙과 달’ 등 신작 20여 점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일렁이는 푸른 바다와 너른 황금빛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겨울에도 자연의 경쾌함과 아름다움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채성필 개인전 ‘Origine: 원시향’이 11일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개막했다. ‘물의 초상’, ‘대지의 몽상’, ‘흙과 달’ 등 청색, 녹색, 황금색 등 다채로운 빛깔의 대표 연작 2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타이틀 ‘원시향’은 작가의 대표 연작과 동명으로, 근원의 향기를 뜻하는 ‘원시향(原始香)’과 멀리서 바라보는 고향이라는 의미의 ‘원시향(遠視鄕)’을 동시에 함의한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20대 남성 관람객은 “전시장을 들어오자마자 푸른빛의 대작 세 점이 함께 걸려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작품이 커서 컬러가 더욱 생생히 다가온다”라고 감상평을 전했다. 전시장 메인 홀 전면 벽에 150호 크기의 ‘물의 초상’ 세 점이 연달아 내걸려 흡사 힘차게 물결치는 파도를 마주한 듯한 감상을 일게 한다. 아울러, ‘내면의 산책, 숲(230727)’(2023)도 눈여겨봄 직하다. 흑백사진을 연상하는 회색조의 신작으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겨울의 자작나무숲을 떠오르게 한다.



채성필은 흙을 소재로 삼아 자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회화 작업에 천착해 왔다. 그는 실제로 흙으로부터 만든 천연안료를 비롯해 먹, 은분 등을 사용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오행을 화면 위에 구현하고자 한다. 태초의 자연이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극상생으로 만들어진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화판(畫板)이란 덩어리 자체가 근원의 공간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본질과 근원을 이야기하기 위해 채성필은 흙을 택했다. 흙은 지난 수많은 세월과 역사를 관통해 온 현장이자 인간의 터전이며, 지리 문화적 특성을 보임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본질적 공통성 또한 아우른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또한 고국과 가족을 향한 볼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가시화하고 화면에 담아낼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이기도 하다. 그가 흙을 재료로 사용하는 배경이다.
“흙 그림은 전업 작가로서 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결코 떠날 수 없는 근원이며 이상적인 가치이자 정신성을 상징합니다. 흙은 제게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감상과도 같아요. 그야말로 흙은 인간의 본질과 그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요. 알면 알아갈수록 겸손을 알려주는 자연과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항아리 형상을 한 달을 그린 ‘흙과 달’ 연작도 대거 공개된다. 특히 20호 사이즈로 오방색 배경의 다섯 점 시리즈가 아트 컬렉터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늦은 밤 프랑스 작업실에서 문득 창밖의 보름달에서 흙이 지닌 그리움과의 동질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채성필은 흙으로 빚은 달항아리 모양의 달을 캔버스에 심었다. “흙과 달은 분명 먼 거리를 두고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인데, 어째서인지 제 마음속에서만큼은 둘은 하나가 됐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언제라도 돌아갈 수도 없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간절하고 짙은 것일 테죠. 그러한 커다란 그리움을 담아 흙으로써 항아리를 닮은 형상의 달을 그렸습니다.” 2월 17일까지. 무료. 화~토 10:00~18:00. (02)736-78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