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8.09 17:50
아시아 첫 개인전
19일까지 한남동 VSF


유화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려 만든 표면이 과감한 색채와 제스처 그리고 이미지로 가득하다. 현대 생활 속의 불협화음, 혼란스러움, 산만함이 반영된 여러 순간이 하나의 몽타주로 겹치며 밀도 높은 화면을 이뤄낸다. 이처럼 알렉스 베세라(Alex Becerra)의 작업은 다층적이며 내러티브적으로 구성돼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과 감성을 연결하는 경험을 통해 구체화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작가 베세라는 회화, 드로잉, 조각 등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현대성을 바라보는 방식과 이에 관한 탐구를 이어왔다. 대표작 'The Worst of Classical Easel Painting Oil'에서는 이러한 작가 특유의 회화가 지닌 파편화된 동시성과 명확성 사이의 긴장이 잘 드러난다.
화면 속에는 한 남성이 이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수염을 기르고 단정하게 정장 재킷을 입고 물감 튜브에서 직접 짜낸 옅은 노란색 윤곽선으로 그려진 화가는 유럽의 ‘플레인 에어(plein air)’ 기법의 계보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 장난스럽게 놓인 소시지가 작가의 위트와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남성 주변으로는 초록색 잎이 무성한데, 이는 곧 그 옆의 여성의 모습으로 오버랩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성의 몸은 누드인 동시에 열대 식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고갱이나 루소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풍경과 초상화에 대한 순수한 영감의 원천을 찾기 위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럽을 떠나 대상화된 시선에 대한 베세라의 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화면 구성을 통해 베세라는 마치 추상으로 녹아들어 현실적 명확함을 자기 시선의 전유물로 남겨두거나 자신만의 현실을 재창조하고자 한다.


알렉스 베세라의 아시아 첫 개인전 '이해의 전주곡(Prelude to Understanding)'이 서울 한남동 VSF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근작들이 내걸렸다. 그중에서도 두 캔버스가 병치된 'Untitled'가 눈에 띈다. 왼쪽에는 스파이더 휠 모양 고무 타이어가 산더미처럼 불규칙하게 쌓여있고, 오른쪽은 붉은 해골, 놀란 얼굴, 플랫폼 슈즈를 신은 여성의 다리, 파인애플, 회색조 그러데이션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회화의 역사를 상기하며 베세라의 예술적 관심과 소재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줄 것이다. 1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