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6.23 18:48
[애드 미놀리티(Ad Minoliti)]
한국 첫 개인전 ‘숲의 기하학’
기하학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 동시대 어젠다
8월 20일까지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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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 넘치는 깜찍한 눈망울, 사람인지 동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불분명한 형상, 통통 튀는 화려한 색감까지 애드 미놀리티(Ad Minoliti·43)의 화면에는 익숙하면서도 모호한 이야기와 형태가 종횡하고 교차한다. 그는 젠더리스나 섹슈얼리티, 페미니즘과 같은 동시대 어젠다를 고유의 기하학적 조형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논바이너리(nonbinary) 작가다. 논바이너리란 성별이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으며 성별을 규정짓거나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개념이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 달린 귀여운 눈동자 혹은 생명체를 연상하는 부정확한 외형을 빌려 기하학적 추상화로 표현되는 미놀리티의 회화는 시스템과 규범을 해체하고 동시에 식별하고 규정짓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베니스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에서의 개인전 등을 통해 인정받은 바 있다. 미놀리티가 아동 문학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활용한 신작을 들고 한국 아트러버들과 처음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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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놀리티의 한국 첫 개인전 ‘숲의 기하학(Geometries of the Forest)’이 서울 사간동 페레스프로젝트에서 펼쳐진다. 버섯들이 자라나는 숲이나 동굴을 연상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숲의 생태계와 아동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된 회화 15점과 다람쥐, 나무, 토끼, 달팽이 등의 이미지로 이뤄진 벽화를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오는 가을에 있을 독일 에를랑겐 미술관(Kunstpalais Erlangen)에서의 개인전에서 선보일 새로운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작가는 동화에 나오는 듯한 풍부한 생태적 이미지를 활용해 환상적인 동화 같은 세상을 꾸렸다. 이를테면, 어린 소녀들은 숲을 헤매고, 마력을 가진 상상 속 동물들이 버섯과 나무속에 그들의 집을 지어준다는 이야기처럼 작가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구분을 흐리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해체해 기하학으로 변환한다. 이로써 미놀리티는 젊은 세대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어린이를 정체성과 성별에 대한 규범적인 시각으로 규정하는 조직적인 편견을 폭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어덜티즘(adultism)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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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Mariposa’(2023)에서 한가운데 있는 알 수 없는 형상은 나비인데, 움직이는 날개에는 ‘브래들리 인형(Bradley Doll)’의 특징인 만화 캐릭터 같은 반짝이는 눈이 달려있다. 끔뻑일 것만 같은 진한 속눈썹이 달린 이 눈의 표면은 빛나고 있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흐릿함과 망각을 암시한다. 꽃 모자를 쓰고 여러 겹의 가운을 걸친 전형적인 브래들리 인형은 여성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이 인형의 특성을 빌려 성별 너머의 것을 건드리고자 하는 것으로, 반짝이는 인형의 눈을 통해 성별을 구분 짓는 행태를 꼬집는다.
강렬한 대비의 색감과 대범한 화면 구성 뒤에는 미놀리티의 환상적인 유토피아가 존재할는지 모른다. 보는 이를 꿰뚫어 보는 듯한 화면 속 귀여운 눈동자는 8월 20일까지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