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The Return of the Witch'展

입력 : 2023.01.11 11:27   |   수정 : 2023.01.11 11:28
●전시명: 마녀의 귀환 The Return of the Witch
●참여작가: 박영숙 PARK YoungSook
●기간: 2022. 10. 22 - 2023. 08. 27
●장소: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5층 기획전시실 (제주 제주시 탑동로 14)
●문의: (064)720-8201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 탑동시네마 5층의 기획전시실에서 <미친년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선구적인 여성사진가 박영숙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박영숙은 1960-70년대 당시 남성적 질서가 만연했던 한국 사진계와 회화 중심이었던 한국 미술계에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고투하며 여성주의적 사진이라는 영역을 일구어냈다. 뿐만 아니라 2007년부터 10년간 트렁크갤러리를 운영하며 사진가 육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동시에 기획자로서 예술계에 사진의 의미와 위치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박영숙은 1986년 숙명여대 산업대학원 사진디자인과 졸업 이후 여성주의 단체 ‘또 하나의 문화(또문)’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을 확립하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구성사진 작업(constructed photography)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미친년 프로젝트>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 이데올로기가 부계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 양육을 신성한 영역으로 미화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 속박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 여성의 모습을 담아내며 미화되지 않은 여성의 몸을 드러냈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여성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으나 당사자를 그대로 촬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동료들과 함께 해석하고 공감하며 연출해냈다.
 
 
카메라 뒤에 서있기보다 피사체 여성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상황을 해석해 연출하는 방식의 협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남성 사진가의 사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미친년들>(1999)은 미친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하며 여성의 자아와 욕망을 억압해온 가부장제 사회에서 미쳐야만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의 현실을 담아냈다.
  
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알 수 없는 어딘가를 응시하며 정신적 탈출을 시도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2002)은 사적이고도 친밀한 공간인 집이 여성의 노동과 헌신을 요구하고 동시에 그들을 소외시키는 억압적인 사회구조로 작용함을 드러냈다.
 
<꽃이 그녀를 흔들다>(2005)에서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꽃에 비유되던 여성이 자신을 구속하는 현실로부터 탈출을 감행하며 자아와 욕망을 지닌 주체로서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오사카와 도쿄의 페미니스트>(2004)를 통해 21세기 여성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과 ‘여성으로 살아내기’라는 공동의 고충을 공유하며 문화적 성 역할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박영숙은 ‘미친년’이라는 단어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욕설과 다름없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에 한편으로는 가부장제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함축되어 있음을 포착했다. 박영숙은 미친년에 남성 중심의 질서와 권위에 도전한 진보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마녀는 미친년의 다른 이름이다. 박영숙이 페미니스트로서 처음 선보였던 작품 <마녀>(1988)는 사회질서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여성을 억압하고 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자 고안된 마녀 프레임 아래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들의 영혼을 소환하고자 한 포토몽타주였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마녀와 미친년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화폐개혁프로젝트>(2003)로 나타났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화폐 속 남성초상을 불평등사회구조에 저항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낸 여성들의 모습으로 대체했다. <내 안의 마녀>(2005)를 통해 자기 안에 감춘 마녀를 드러내자고 이야기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와 미래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시각과 전복적 시선을 가진 지혜로운 21세기 여신 <우마드>[Womad, 여성과 유목민을 합친 신조어](2004)로 시각화했다.
 
 
트렁크갤러리를 정리한 뒤, 어느 곳보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았던 땅 제주에서, 버려진 땅 곶자왈을 거닐다가 그곳으로 숨어든 마녀를 직감한 박영숙은 그 영혼을 위로하고자 그들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림자의 눈물>(2019)에서 일상적 세계와 분리된 공간, 축축함이 느껴지는 원시적 숲에서 여성의 몸은 사라지고 키치적인 사물이 흔적을 대신한다. 노년의 작가는 비로소 여성주의적 문제 제기의 시선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신의 부재와 자신의 여성성을 응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숙은 욕망의 대상이거나 타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여성적 사진찍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여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자 공감의 영역인 동시에 서로 연대하며 함께하는 삶을 고민하는 여성주의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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