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의 나부끼는 치마폭처럼… 제여란의 역동적 ‘퍼플’

입력 : 2022.12.13 17:49

개인전 ‘로드 투 퍼플’
내년 1월 19일까지 마곡동 스페이스K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450x300cm, 2022. /스페이스K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450x300cm, 2022. /스페이스K
 
보라색은 붉은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띠며 까다롭고도 고귀한 자태를 지닌 빛깔이다. 제여란(62)이 묘한 컬러의 보랏빛 회화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Road to Purple)’이 내년 1월 19일까지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탐구해온 색채 흐름에 주목하며, 보라색의 대작 ‘Usquam Nusquam’(2022)를 비롯해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그의 작업 세계 전반을 한데 보여주는 자리다. 1990년대 제작된 질감이 두드러진 검은색의 회화는 2000년대 초반 어두운 톤의 푸른 색조와 붉은 색조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어지며, 이후 2000년대 중반 제작된 회화에서는 본격적으로 스퀴지를 활용해 율동감이 도드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지난 30여 년간 추상 작업을 통해 회화와 조형 언어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제여란은 스퀴지를 활용한 몸짓이 담긴 특유의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캔버스에 펼쳐지는 우주와도 같은 고혹적인 그의 회화 안에는 색과 색 사이 펼쳐진 빛의 다발, 재료의 점성에 따라 변하는 몸과 캔버스 간의 밀고 당기는 긴장과 조율이 공존한다.
 
이를테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시리즈 ‘Usquam Nusquam’은 ‘어디든 어디도 아닌’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명제로 삼고 있는 만큼,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유토피아처럼 지상에는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무엇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제여란의 대표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다채로운 색을 활용하는 작가의 본격적인 색채 감각을 보여주는데, 푸른색과 붉은색을 비롯해 초록과 노랑 바탕에서 흑백 톤을 조절해 긴장감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162.2x162.2cm, 2022. /스페이스K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162.2x162.2cm, 2022. /스페이스K
 
특히 스퀴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며 몸의 움직임과 긴장감이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난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 새로운 색을 펴 발라 거듭 쌓아 올리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물감의 퇴적으로 시간성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스퀴지 사용에 대해 ‘둥근 몸과 반대되는 직선 구조의 도구가 서로 대항하면서 오는 긴장이 있다’라며 예기치 못한 표현에서 오는 묘한 쾌감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지금껏 작가가 걸어온 추상의 여정을 색의 변화 과정으로써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서는 제여란 특유의 역동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회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료 8000원.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제여란 개인전 ‘로드 투 퍼플’ 전경. /스페이스K
 
한편, 작가는 1985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0년 인공갤러리, 2006년 토탈미술관, 2014년 스페이스K, 2015년 인당미술관, 2016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2018년 전혁림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토탈미술관, 루이비통재단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