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9.20 16:39
대표작 ‘닥’ ‘묵고’ 등… 10월 15일까지 PKM갤러리

고유의 한지 작업으로 잘 알려진 정창섭(1927~2011)은 생전 진정한 한국적 현대미술을 구현하기 위한 모색과 도전을 치열하게 이어왔으며, 이는 작가의 국제적인 입지를 다지는 배경이 됐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껍질 섬유에 물을 섞고 면 캔버스 위에 펼쳐 완성한 ‘닥’ 시리즈는 작업의 진행 과정과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은 작가 자신이 주체가 돼 재료를 수단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물질 자체가 품은 상상력과 표정이 드러나도록 돕는 것이었다.

작가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집중해 발전시킨 또 다른 연작 ‘묵고’는 그 이러한 예술적 태도가 더욱 심도 있게 진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묵고’ 시리즈는 누름 기법을 통해 닥의 질감이 우리 고유의 깊이 있고 절제된 색감들과 융합해 화강암처럼 단단하면서도 품위 있는 조각적 표면을 지닌다. 이는 평면성을 넘어선 촉각적인 오브제 회화로서 대상(物)과 자아(心)의 일체화를 이룬 정창섭 예술의 미학적 성취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수성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한국 현대미술을 구현하고자 일생을 바친 정창섭의 예술혼은 마지막까지 탐구한 ‘묵고’ 연작에서 발화해 작가의 바람대로 한국인의 미의식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국제 미술계에서도 보편성을 획득하는 성취를 이룬 셈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한 제1세대 거장이자 단색화의 대표작가 정창섭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물(物)심(心)’이 10월 15일까지 PKM갤러리에서 개최된다. 1980년대 제작된 ‘닥’ 연작에서부터 원숙함으로 독창적 화업의 정점을 이룬 2000년대 초의 ‘묵고’ 연작에 이르기까지, 정창섭의 후기 예술세계를 집약하는 엄선된 회화가 갤러리 전관에 내걸린다.

한편, 정창섭은 파리비엔날레(1961), 상파울루비엔날레(1965), 인도트리엔날레(1974) 등 유수의 국제 미술 행사와 해외 전시에 출품했고 국전, 현대작가 초대미술전, 서울미술대전 등 한국미술사의 주요 연례전에 참가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도쿄도미술관, 홍콩 M+,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세계 유명 미술 기관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