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02 00:04
한편의 꿈과 같이 현실과 비현실 혼재
본전시 ‘The Milk of Dreams’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가들



“(전시장 안에) 나비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프레셔스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의 ‘To See the Earth before the End of the World’(2022)가 설치된 전시장을 들어서기 직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문구다. 작품명이 말해주듯이 흡사 세계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원초적인 지구의 모습과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우거진 풀과 꽃, 물, 돌 등이 어우러져 정원을 연상하는 작품이다. 실제 나비 또한 작품을 이루는 한 요소로, 전시 기간 이곳 안에서 날아다니며 삶을 살아간다.
지난해 프리즈 아티스트상과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를 수상한 오코요몬은 미술가이면서도 시인으로서, 한마디로 쉬 규정짓기 어려운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탈리아 베니스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리고 있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전시 ‘The Milk of Dreams’의 끄트머리에서 마주하는 오코요몬의 작품을 관객이 직접 걸어보고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감각해보며 본전시는 끝이 난다. 그리고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절로 한마디를 되뇌게 된다. “꿈 한편 잘 꿨다.”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가 한해 미뤄지며 '비엔날레‘란 이름이 무색하게 3년 만인 지난 4월에서야 59번째 베니스 비엔날레가 드디어 귀환했다. ’The Milk of Dreams‘란 주제 하에 열리는 올해 행사의 키워드 중 하나는 ’초현실주의‘. 해당 타이틀은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가 지은 동화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는 “캐링턴은 초현실주의 예술가가 상상력의 프리즘으로써 삶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마법의 세계를 묘사했는데, 이는 자유롭고 가능성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비엔날레는 전염병, 전쟁 등 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오늘날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이를 넘어서는 대안적 우주론과 실존의 새로운 안을 제시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다. 초현실을 통해 현실을 투영하고 역설하려는 몽환적인 작품들과 더불어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혼재하는 이유다.



로베르토 길 드 몬테스(Roberto Gil de Montes)의 회화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데, 이는 날리는 꽃들, 재규어 가면, 큰 조개 혹은 동물들 등과 같이 시적이고 은유적인 장치들 덕분이다. 출품작 중 백미는 ‘Los poetas en el mar’(2021)이다. 모래사장 위의 정체 모를 사람들과 물체들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에 반해 풍부한 색감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된 해안풍경과 파도가 역설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현재는 고국인 멕시코에서 생활하며 작업 중이다.


캐나다 출신의 앨리슨 카츠(Allison Katz)는 베니스를 주제로 한 신작들을 내놨다. ‘Milk Glass’(2022)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문어 두 마리는 베니스의 특산물인 무라노 글라스로 제작된 것으로 캔버스에 반사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형상을 그렸다. 그 옆의 대칭된 닭 두 마리는 각각 예술과 경제를 상징하는데 잠시 휴전하고 있는 모습으로 베니스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징한다. 작품명도 베니스의 영문 표기 ‘Venice’와 비슷한 ‘Be Nice’(2022)다.



노아 데이비스(Noah Davis)는 특유의 멜랑콜리함이 풍기는 화면이 시그니처인 작가다. 그의 회화에는 꼭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두 자신과 같은 흑인이다. 뭉개진 듯한 필치 혹은 무력하게 있는 인물들로부터 짙은 고독감이 배어 나오는데, 일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음에도 꼭 꿈속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2015년 희귀암 투병 끝에 서른두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펠리페 베자(Felipe Baeza)는 콜라주, 템페라 등 여러 재료를 활용해 평면임에도 질감이 도드라지는 회화를 완성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반은 인간, 반은 식물의 모습을 한 기괴한 형상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입에서 덩쿨이 자라나고 팔다리 대신에 뿌리가 뻗어나가는 식이다.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초현실적이나 여기에 자수 등을 더해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해낸다.



스테인드글라스, 대리석 등의 재료를 활용해 화석화된 것처럼 보이는 신체를 표현하는 커스틴 브래치(Kerstin Brätsch)의 작업은 형형색색의 빛깔에 눈을 빼앗긴다. 빛을 받을수록 더욱 반짝이며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다가온다.


양털 부츠를 신은 염소에 실소가 터진다. 자미안 줄리아노 빌라니(Jamian Juliano-Villani)가 그리는 만화와 같은 이미지의 회화가 마냥 밝고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아크릴 에어브러쉬로써 꼼꼼하게 일상을 반추하는 화면을 완성하는데, 그 기저에는 유머러스함 외에도 취약함과 트라우마 따위가 깔려있다. 작가는 여느 팝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일상은 물론, 패션부터 미술사에 이르는 광범위한 소재를 차용한다.


한참 전시를 둘러보다가 문득 올려다본 창문에 바깥 수면에 반사돼 남실대는 빛이 새어 들어오는 모습이 꼭 신기루 같았다. 베니스란 도시 자체가 이국적이다못해 초현실적으로 아름답다는 점에서 전시 주제가 더욱 와 닿는 것 같았다. 수십 개국에서 온 수백 명의 미술가들이 참여해 각기 다른 예술세계와 창조성을 뽐내며 다양성의 미학을 내보이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오는 11월 27일까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