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11 15:07
전후의 여성상, 집단기억 등 소재로 한 회화

국제 미술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에 6.25전쟁 이후의 한국 여성을 그린 그림이 내걸린다.
‘스카프 화가’이자 축구선수 박지성의 장모로도 잘 알려진 오명희 수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유러피안컬쳐센터(ECC)의 초청으로 4월 23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조 모라(Palazzo Mora)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특별전 ‘Personal Structures’에 참가,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종식과 함께 찾아온 여성의 해방 시대에 대한 한국인 집단의 기억을 담은 작품을 공개한다. 종전으로 갑작스레 맞이한 서양 민주주의와 이에 따라 여성의 역할 변화에 대한 요구와 동시에 여전히 가부장제가 자리 잡고 있던 시기의 여성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고민한 끝에 작가는 새롭게 선보이는 연작 ’눈이 내렸지만 따뜻했다‘를 완성했다. 신작은 서구화, 한국의 전통주의, 팝 문화 등을 매개로 이러한 시대 속의 갈등과 가부장제 사회에서 공명하는 여성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화면에는 1954년 마릴린 먼로의 주한미군 부대 방문 당시의 이미지와 그와 대비되는 단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 그리고 한쪽에는 한국의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작가, 예술가인 나혜석이 병치돼 있다. 작품명 또한 먼로의 인터뷰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먼로가 미군 앞에서 펼친 위문 공연을 두고 한 말로 알려진다.
작가는 먼로의 방한이 한국 여성에게 중요한 촉매제가 됐으며, 자신만의 길을 추구했던 자유분방한 여성인 먼로가 한국 여성에게 자신들의 꿈을 좇고 스스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서의 영감을 제시했다고 봤다. ‘눈이 내렸지만 따뜻했다’란 문구는 한국 여성이 오랜 세월 공유하던 ‘서러움의 서사’에 도전장을 내밀고 그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신작은 작가가 시아버지의 사진첩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족사진에서 기인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이 자신의 지위, 목적의식,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도전과 모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전통적인 꽃과 새를 그려 넣는 화조 기법을 통해 멀티미디어 작품에서 한순간 아름답고 자유로운 힘을 가진 여성성을 표현하는데, 이는 유교 사상이 내재된 한국의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는 여성을 뜻한다.
작가는 “내 작품은 집단 기억을 말한다.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상흔을 가진 어머니, 할머니의 아픔을 공유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응어리진 아픈 마음을 ‘한’이라고 표현한다. 작품이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애잔하다. 이는 ‘한’ 혹은 그런 정서의 DNA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