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ist] 미술품 물납제와 가치감정①

입력 : 2021.12.03 17:19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 200여 점으로 물납하며 건립됐다.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Béatrice Hatala, Konstantin Lucas Mikaberidze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 200여 점으로 물납하며 건립됐다.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Béatrice Hatala, Konstantin Lucas Mikaberidze
 
◆시작하는 말
 
원래 물납제도는 납세대상자에게 부과된 세금의 현금 납부가 불가능한 경우 재산 즉 현금외의 물건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조세 납부방법으로서 납세의무자에게는 납세 편의를 제공하고 과세 관청에서는 조세 징수권을 확보하는 상호이익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물납의 역사는 과거 곡물이나 면포 또는 노동력으로 조세를 납부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조세법상 물납제도는 1950년 상속세법에 명문화되면서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법인세는 1979년, 양도소득세에는 1995년, 재산세에는 1999년 각각 물납제가 도입되었고 2005년 종합부동산세가 신설되면서 종합부동산세에도 물납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세금은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원칙과 물납으로 받는 재산이나 물건의 처분을 통해 얻는 수익이 원래의 세금보다 현저하게 적게 나와 세수손실이 크고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세금에 물납을 도입하는 예가 적어 2015년 세법개정으로 증여세, 2016년 법인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의 물납제도는 폐지되고, 현재 상속세와 재산세에만 물납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물납제도의 도입 취지는 납세 편의와 조세 징수권 확보라는 목적이지만 문화예술품으로 물납을 가능하도록 한 법안의 경우 이런 물납제의 원칙보다는 문화적인 이유, 예술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제도는 징세를 통해 국가의 재정을 확보하는 것만큼 국내외의 문화재 미술품을 발굴하고 이를 공공재 화해서 국민 나아가 인류 모두가 향유 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확보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즉 조세제도로 징세의 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예술적 정책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세제도는 원래의 징세라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지렛대(leverage) 또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물납제도 그런 예의 하나다. 원래 문화재 미술품의 물납은 자국에 소장하고 있는 국내외 문화재 미술품의 해외반출을 막고자하는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가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도 1966년 피카소(Pablo Picasso)가 85세 되던 해에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린 회고전을 관람한 당시 문화상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피카소 사후에 이 작품들이 해외로 흩어지지 않도록 자국 프랑스에 남겨둘 방안을 고민한 끝에 이 법안을 제출했고 그 결과  1968년 12월 31일 제정되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컨퍼런스 영상 캡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컨퍼런스 영상 캡처
 
물납제는 흔히 돈 많은 재벌이나 자산가들을 위한 세금감면 혜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실제로 물납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앙드레 말로가 생각했던 자국 내에 중요미술품 문화재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효과로 우선 국민의 문화국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의 확대다. 이는 국민 통합의 가장 중요한 단초인 동시에 복잡다단한 국민의 상대적, 심정적 격차를 해소하고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즉 문화적 공유와 공감대 그리고 같은 문화를 향유한다는 공통점은 어느 무엇보다도 국민적 연대감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 주는 근본이다.
 
두 번째 문화향수, 문화 복지의 증대다. 물납으로 확보한 모든 문화재 미술품은 해당시대와 장르에 맞는 국가기관 즉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에 나누어 보관 관리함으로써 조사연구와 국민 일반의 감상기회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또 이를 통해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의 수장품 수집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 세 번째 경제적인 이익이다. 물납으로 국가의 소유가 된 문화재 미술품은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유물 또는 작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할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물납 당시의 금액에 비해 늘 상승세를 유지하며 물가 상승율을 능가하는 가격의 상승으로 국가의 부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국가가 세금에서 지출해야 할 국립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의 작품 또는 장서 구입비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징세 후 예산심의와 편성을 거쳐 다시 각 기관 별로 배분해주어야 하는 비용 즉 예산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의 국민의 문화재 미술품이 어느 한 개이나 가문의 비장품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향수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것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쉽게 사장되거나 묻힐 수 있는 문화재 미술품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발굴’의 의미가 물납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물납제의 목적과 기능을 일찍이 간파한 영국은 이미 1896년 처음으로 상속세를 미술품이나 문화재로 납부하도록 하는 물납제(AiL, Acceptance in Lieu)를, 프랑스는 대물변제제도(La Dation en Paiement)를 1968년 처음으로 ‘상속인과 수행인 또는 합법적인 당사자가 예술 작품·서적·컬렉션 항목 또는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서로 지불할 수 있다’는 조항을 설치해 물납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일본 등등 소위 문화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보다 선진국의 대열에 먼저 들어선 나라들은 모두가 문화재 예술품으로 상속세와 증여세, 재산세 등을 납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나라가 문화재 미술품으로 물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현금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며 공동체를 문화적, 예술적으로 살찌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재와 예술품은 사회적 의제인 동시에 예술이 깊고 실질적인 정신적 변화를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 녹색당의장이자 연방하원의장으로 최근 독일의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클라우디아 로스(Claudia Benedikta Roth)의 새삼스럽지 않지만 잊고 있었던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 좋은 시간을 위한 케이크 위의 장식도, 사치품도 아니지만, 우리 인간 존재에 필수적이며,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 음식이자 주식”이라는 문화의 가치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도 문화예술계가 그토록 염원하던 물납제가 지난 11월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제 과제는 물납제를 위한 공정하고 정당한 가치평가(art valuation)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으로 등장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미술품 가격감정, 가치평가에 대한 현황과 전망을 통해 물납제 정착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물납제의 전제, 정당한 평가
 
물납제의 중요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물납제를 도입하는데 주저했던 것은 일단 문화재 미술품으로 물납을 할 대상자가 일부 부유층이라는 전제 때문에 ‘부자를 위한 제도’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가장 도입을 꺼리는 이유는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문화재 미술품으로 세금을 대신해 납부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 작품을 정확하게 규정한다면 세수 부족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물납의 대상이 모든 문화재, 미술품이 아니라 적어도 물납 이후 50년 이내에 국가 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면 물납이 세수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또 영국처럼 연간 물납의 총액을 정해놓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사실 세수가 줄어들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는 2021년 만해도 최소한 19조를 초과로 세금으로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물납 허용을 주저했던 이유로 “모든 세금은 현금납부를 원칙으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문화재 미술품의 물납이 징세수단이 아니라 문화유산에 대한 국가적 수집행위이며 그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로 문화재 미술품의 가격결정의 객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정당성을 결여한 이유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재 조세당국은 문화재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징수하기 위해 이미 미술계의 감정가격을 근거로 이를 부과하고 있다. 이때 부동산 감정과 마찬가지로 2개 이상의 감정인 또는 감정회사가 각각 산정한 감정가의 평균을 취해서 세금을 부과한다. 그리고 만약 이 감정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세무서장은 자체적으로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정평가심의위원회를 꾸려 더 높은 가격을 취해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미술품 가격 감정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은 현재 미술품에 관련된 모든 세금부과의 당위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또 물납으로 징수한 일반 주식이나 부동산의 처분 시 감정가보다 실제 매각가격이 낮아 세수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문화재 미술품의 물납 도입을 부정하는 이들의 논리지만 실제로 물납으로 확보된 문화재 미술품은 재판매해서 현금화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관련 문화시설 또는 기관에 소장품으로 이관해서 조사연구, 전시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이 점을 간과한 채 일반 부동산과 유가증권에 관한 물납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화재 미술품의 물납제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또 이런 우려를 감안해 물납제의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재 미술품의 가치평가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고 ‘특별한 예술적 또는 역사적 중요성이 있는’ 작품으로 제한해 문화부와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부처 간 승인위원회의 검토와 승인을 거치자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주장이었던 점을 감안해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세부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 미술품의 가치평가는 문화적 재화로서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내는 추정 과정을 거치는 일이다. 하지만 문화재 미술품의 금융적 평가는 미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재정적 문제에 가깝지만, 문화적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가 빠질 수는 없다. 즉 지금 당장 시장에서의 가격도 중요하지만, 미학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고려해서 미래가치까지 포함해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재 미술품 평가에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입해본 경험 있는 큐레이터, 개인 및 기업의 컬렉터, 화상, 경험 많은 컨설턴트와 전문 미술시장 분석가들이 여러 출처의 데이터를 비교하여 가치를 도출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이러한 미술품의 가치평가 즉 가격 결정은 현재 수집, 투자, 매각 및 자금 조달 목적뿐만 아니라 자산 재평가, 기부, 세금, 보험 및 담보대출의 목적으로도 실시되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컨퍼런스 영상 캡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컨퍼런스 영상 캡처
 
사실 문화재와 미술품의 예술적 카리스마의 원천은 창조하는 예술가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후원자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지만, 역사적으로 작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작품의 카리스마적인 힘은 작품을 수집하게 하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동인이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적인 힘 즉 아우라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상업적인 문화와 새로운 예술 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앤디 워홀(Andy Warhol)같이 미술품을 대량생산된 공산품과 같이 취급하면서 미술은 사업이 되었고,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자리한 것도 미술 시장의 발전과 미술품의 가치평가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자리를 잡아나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예술의 장르 중 유일하게 거래가 가능한 실체가 있는 장르인 미술은 이미 고대, 중세에도 판매가 되었지만, 이는 주문제작(commission work) 방식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19세기와 20세기의 미술시장의 발전과 문화산업의 하나로 자리하면서 가격감정, 가치평가가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컬렉터에게는 문화재나 미술품 또는 컬렉션에 대한 감정적 유대감이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컬렉터의 기호와 취미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이며 정성적인 평가는 때로는 실제 재정적 가치보다 컬렉터의 주관적 가치에 근거한 가격에 의해 일반적인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되고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술품 문화재의 가격에 대한 미국 미술딜러협회(ADAA)는 진품성, 품질, 희소성, 상태, 출처 및 예술적 가치를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경우에 따라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추정시장수요, 작품, 작가의 추정 유동성, 작품의 상태 및 출처, 평균 판매가 및 평균 호가와 같은 평가동향을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품을 담보로 할 때도 평가가 필요하다. 미국만 해도 미술품을 담보로 하는 대출 시장의 규모가 연간 150억달러(약 18조원)에서 190억달러(약 22조6000억원) 규모이기 때문에 대출을 위한 문화재 미술품의 가치평가가 일반화되어있으며 이는 그만큼 가치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 이외의 아시아 지역 소재 해외미술품의 경우 대출을 받기 위한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평가시장을 외국에 내 주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미술품 가치평가를 육성해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문화재 미술품의 가치평가에 대해 무조건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산업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
 
※[Specialist] 미술품 물납제와 가치감정②에서 이어집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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