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31 17:18
‘한국적 모노크롬’ 천광엽
개인전 ‘옴니’ 10월 8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

천광엽(63)에게 있어 ‘점(點)’이란 윤곽을 지닌 최소의 형태이자,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유기적 물질의 집합체, 동시에 무의식의 층에서 채 의식화되지 못한 파편들과도 같다. 그의 화면은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깊이감과 밀도감으로 그득하다. 작은 점의 군집이 빚어낸 미묘한 파동과 정적인 운율은 놀랍도록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색채 속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모노크롬 회화로 완성된다.

김근태, 윤상렬, 박종규 등 단색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해 온 부산 데이트갤러리가 이번에 주목한 작가는 천광엽이다. 후기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높이 평가받으며 부상 중인 천광엽이 데이트갤러리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 ‘옴니(Omni)’를 열고 한국적 모노크롬을 지향하는 그의 회화 다수를 내건다.
전시 타이틀 ‘옴니’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특정한 것에 편향되지 않는 무지향적 성격으로, 하나를 위한 전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해 출력한 작은 점의 군집을 타공된 얇은 플라스틱 시트지에 옮겨 담는 데서 시작되는 천광엽의 작업을 대변하기도 한다.

천광엽이 점을 소재로 삼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작은 점들을 캔버스나 알루미늄판 위에 부착한 뒤, 그 위에 유화물감이나 안료를 여러 번 바르고 말리고 또 사포로 일일이 갈아내길 수없이 반복하며 레이어를 중첩해 밀도 높은 화면을 구성해왔다. 이렇듯 묵묵히 수행하듯 이어지는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추상의 핵심 정신에 더욱 근접하게 하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 특유의 금욕적이며 절제된 미감에 의해 정교하게 완성된 화면은 작가의 ‘몸성’을 머금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흡사 착시를 일으키는 듯한 일렁이는 작은 점들이 만들어내는 몽롱함과 색채의 정적인 운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9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다. 전시 오프닝 행사는 9월 9일 전일 진행된다.
“나의 작업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나라는 인간의 본질 그 자체다. 그것은 내 유년의 낙원과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이미 만들어져 절대적으로 나와 동떨어질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복잡하고 지적인 해석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쉽게 발견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작가는 경희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展)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한국의 대표 단색화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추상미술을 알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