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14 18:28
| 수정 : 2021.06.17 15:54
한국 고유 정서에 다변적 역동성 더해
범세계적 공감 끌어내
미술이란
타자 간 온전한 공감 가능케 하는 매개
바야흐로 물이 들어왔다. 최근 미술시장은 MZ세대의 유입과 시장의 유동자금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미술시장이 인식되면서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실제 최근 개최된 제10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의 작품 판매 총액은 65억원에 달해 역대 최고 성과를 기록했으며, 옥션 시장도 뜨겁게 달궈지는 분위기다. 이런 훈풍이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미술계가 직면한 과제와 미래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아트조선>은 한국 미술계를 리드하는 분야별 ‘파워 피플’ 3인을 선정해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언제나 그랬듯 현장에 답이 있다. [편집자주]
1982년 세워진 국제갤러리는 설립 초기부터 해외 블루칩 작가와 대형 작가를 국내 시장에 소개하고 로컬 컬렉터의 취향과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데 선도적으로 힘써왔다. 대표적으로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줄리안 오피, 제니 홀저, 장 미셸 오토니엘 등을 국내에 소개해오며 단순 화랑을 넘어서 서울의 문화허브,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해온 셈이다. 동시에 한국 근현대작가들을 해외 미술시장에 앞장서 알리며, 박서보, 하종현, 권영우 등 전후시대 단색화 작가들은 물론, 유영국, 최욱경 등을 중심으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세계 아트씬에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이에 이들의 작품이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되고 전시가 연달아 성사되는 등 유의미한 결실을 이뤄내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국제갤러리의 이와 같은 행보에 더욱 힘을 싣는 기획전이 연이어 예정돼 있다. 9월 서울점에서 개최되는 박서보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자연이나 본인이 거주하고 작업하는 서울 도시 경관에서 발견한 색들을 담아낸 후기 묘법 연작을 볼 수 있다. 그에 앞서 6월에는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신작과 설치를 선보이며, 이후 10월 부산점에서는 갤러리의 새로운 전속 작가인 영화감독 박찬욱의 사진전이 이어져 미술계 안팎으로 기대가 높다. 그의 영화가 그러하듯 고급과 저급, 의미의 여부, 미추를 구분 짓는 기준을 무화하며 예술 성립 조건을 질문하고 기존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국제갤러리가 정의하는 한국 현대미술은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를 아우르는 다채롭고 역동적인 움직임 그 자체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글로벌한 보편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미술이랄까요. 이를 통해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이 정립될 수 있었던 거죠.” 송보영 국제갤러리 부사장으로부터 세계 아트씬과 그 중심에 안착한 한국미술에 대해 들어봤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0여 년간 아트바젤, 프리즈, 피악, 아모리쇼 등 주요한 세계 아트페어에 참가해왔다. 오늘날 현장에서 체감하는 한국 작가와 한국미술의 위상은 어떠한가.
“지난 한 해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아트페어의 현장감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열린 오프라인 페어와 온라인 뷰잉룸에서 단색화 등 한국미술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글로벌 아트마켓에 맞는 언어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함에 있어 부단한 투자가 필요했다. 당시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한국 현대미술은 제3국의 미술 정도로 인식됐던 것 같다. 대체 한국 현대미술이 어디서 어떻게 기인했는지를 궁금해하더라. 그들의 그러한 호기심과 니즈와 맞물려, 2015년을 전후로 단색화를 필두로 해 한국미술은 빠른 속도로 세계 미술시장에 자리 잡았다. 한 번 시장에 안착한 뒤부터는 알아서 ‘블루칩 작가’로 통용되는 분위기다. 해외 컬렉터들이 작가의 디테일한 정보와 작품 정보를 까다롭게 요구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박서보, 권영우, 하종현의 작품을 영구 소장했으며, 국제갤러리는 오는 9월 서울점에서 박서보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단색화의 제2 전성기가 재현되려는 꿈틀거림인 것인지? 국제갤러리는 단색화 붐을 이끈 주역으로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단색화의 현주소와 위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
“이전에는 단색화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했다면 이젠 그걸 지나, 해외 시장과 컬렉터들이 그 정도는 먼저 다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자는 단색화를 하나의 유행으로 얘기하기도 하지만, 고스란히 현장미술로 이어지며 기관과 미술관 등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팩트다.
지난 5~6년간 단색화를 두고 분분한 의견이 많았지만 정작 우리는 현장에서 너무나 바빠 정신이 없었다. 그만큼 단색화에 대한 수요가 엄청났고 이를 담론화하려는 열의가 어마어마했다. 잠깐의 트렌드냐 아니냐를 논할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엄연한 블루칩이며 이제는 미술사조에서 단색화의 위치를 고민할 단계인 것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 중 단색화를 소장하지 않은 기관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단색화는 시장성뿐만 아니라, 학술적 연구와 담론 형성으로까지 연결되며 미술사에서의 하나의 서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술사조나 미술사의 서사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정교한 과정이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술계의 전체적인 합의와 정밀한 모종의 관계가 축적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단색화는 현재 그러한 발전을 자연스레 이뤄내고 있다.

최근 퐁피두센터에서 단색화 소장 소식과 단색화 작가들에 대한 꾸준한 해외 갤러리들의 관심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재의 상황이 단색화의 제2 전성기라기보다는 2015~2016년을 관통했던 ‘단색화붐’ 이후에도 존재해왔던 단색화 미학에 대한 지속된 담론이 심화돼 가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적절한 것 같다.
초기에는 국내 화랑들이 단색화를 소개하는 형태였다면, 그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는 해외 기관과 화랑들이 주체적으로 단색화를 소장하고 연구하는 추세다. 초창기에는 한국 작가들을 한데 모아 단색화라는 큰 틀 안에서 성글게 묶었지만, 이젠 그들 개개인의 작업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등 작가별 중요성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도쿄 블럼앤포갤러이에서는 권영우의 한지 작업을,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는 하종현의 신작을 선보이며 단색화 작가 개개인의 주목도도 높아지고 시장의 수요도 자연스레 형성되는 듯하다.”

─박서보, 권영우, 하종현은 물론, 최욱경도 퐁피두센터에서의 그룹전에 참여하고, 김수자, 양혜규, 강서경 등 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약진이 해를 거듭할수록 도드라진다. 이들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들의 작품을 통해 세계무대에서 인식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설명한다면.
“한국의 콘텐츠이지만 세계인에게도 이물감이 없고 아시아성에 갇히지 않는 다변적 역동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아시아미술과 비교하자면, 한국 현대미술은 대단히 역동적이다. ‘한국성’이라고 불리는 정서를 글로벌함과 섞어 세계 미술시장이 공감할 수 있는 진화된 한국성을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한국적인 것에만 갇혀있지 않고 범세계적 언어에 녹여내 국제 아트씬에게 쉽게 다가갔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여타 아시아미술과 비교해 그런 능력이 아주 탁월하고 세련됐다. 동시에 특징을 특정 짓기 힘든 것이 한국미술의 특징인 것 같다. 한국작가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유니버설한 감성 덕분에 국제 미술시장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갤러리가 관심 있게 바라보는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는 무엇인가.
“회화는 단색화를 중심으로 여전한 강세다. 최근 참가한 ‘2021 아트부산’ 현장에서도 이우환, 하종현 작품이 좋은 결과를 냈다. 또한 젊은 컬렉터들이 유입되면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대의 에디션 작품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더불어, 시장에서 자본 유동성이 커지면서 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블루칩 작가에게도 컬렉터가 쏠리고 있다. 동시에 여성작가라는 키워드도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 전통무용을 소재로 해 조각과 회화가 결합된 작업을 지속해온 강서경이나 이미 아이코닉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양혜규에 대한 관심만 봐도 알 수 있다.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접근하기가 비교적 쉽고 직관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몰입형 혹은 체험형 전시가 트렌드다. 그중에서도 미디어아트가 대표적인데, 지난해 코엑스 전광판에 펼쳐진 시원한 파도 작품 <Wave>라든지, 총 관람객 1만7000명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에이스트릭트 개인전에서 선보인 <Starry Beach>와 같이 팬데믹을 관통하며 관람객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이러한 체험형 전시를 선호하는 것 같다.”

─전 세계가 팬데믹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에 미술계 또한 전례 없는 격변을 겪고 있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이 새로운 시대에 국제갤러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술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나.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미술품 유통 플랫폼의 다변화와 온라인 미술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미술품 구매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뤄지면서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컬렉터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시장 동향에 민감하고 흐름을 빠르게 판단하는 이들 덕분에 주목받는 작품도 더욱 다양해진 것 같다. 예컨대, 팬데믹으로 인한 이동제약이 있지만 그에 반해 미술시장은 오히려 탈국가적, 탈장르적 면모가 강세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해외 대형 갤러리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개인전을 연다든지 전속작가로 영입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동시에 AI, VR 등 신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작품들도 최근 들어 눈에 자주 띈다.
코로나19 전에는 매년 아트페어를 16개씩 나갔다. 디아스포라적 삶은 선택이 아니라 갤러리 생존에 있어 필수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국내에 머물며 가만히 지켜보니 젊은 컬렉터의 유입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새삼스레 체감했다. 초심자라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들은 첫 컬렉션부터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등 기존 양상을 깨는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더라. 아예 영 아티스트만 컬렉팅하는 이들과 블루칩 작가만 모으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며 이 둘이 섞이는 것 같진 않다. 요즘 젊은 컬렉터들과 MZ세대의 이러한 특이한 성향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해외 컬렉터들의 방한이 어렵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을 좀 더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온라인 뷰잉룸을 비롯해 영상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아티스트 스튜디오 방문 소개 영상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온라인 뷰잉룸에 올릴 작품은 더욱 다층적으로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게끔 제작 예산을 대폭 늘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도전과 시도가 맞물리며 향후 1~2년간 글로벌 아트페어 등 국제 미술시장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은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오고 있고, 최근 프리즈도 서울에 진출을 선언, 내년부터 개최되는 등 이미 훌륭한 자본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맷집도 늘었고 경험도 많은 나라다.
프리즈를 기점으로 해외 화랑들이 대거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자본력으로 똘똘 뭉칠 텐데, 한국 갤러리들도 그간 몸집을 키워왔고 글로벌 화랑들과도 견줄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다만 그 사이에서 중소형화랑들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또 다른 영역일 것이다. 위기와 기회가 엇갈리며 한국 미술시장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 같다.”

─지난해 재개관한 K1은 전시장뿐만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운동시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이며, 현재 리모델링 중인 갤러리 근방의 별도의 건물 역시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갤러리와 이 시설 간의 상호관계 그리고 이들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예전에는 아트페어에 직접 가봐야 하고 전시를 눈으로 봐야지만 정보를 얻는다고 했지만, 이제는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핸드폰으로 작품을 보고 사고 미술을 배우는 시대다. 이처럼 온라인과 언택트 환경이 강화돼 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 더욱더 특별해야 하는 근거가 마련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시각 미술을 경험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채널을 구축하고 싶은 마음에서 다채로운 문화공간을 지었다. 온라인 환경이 급성장하는 시대에 정작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미술을 경험하게끔 해서는 경쟁력이 없지 않겠나. 최대한 오프라인 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차별성을 높이고 다각적 경험을 제공해 방문객에게 남다른 기억을 선사하고 싶었다. 직접 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특별함과 차별성을 위해 국제갤러리는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또 새로운 공간의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그림 하나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분야적 통합이 하루가 다르게 유의미해지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고 한발 앞서 전시와 공간 자체를 입체적으로 꾸리고자 했다.

K1은 양혜규, 김영나, 우고 론디노네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 카페, 레스토랑, 웰니스K 등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들 시설을 전시와 함께 즐기며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이 조화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반기 오픈 예정인 별도의 새 공간에는 세계적인 예술서적 출판사의 국내 첫 서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준 높은 예술서적을 소개함으로써 국내외 미술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현대미술 외의 다양한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과 이를 둘러싼 공간과 외부환경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그러한 새로운 경험을 제한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자 한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의 힘이란.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언뜻 미술이 무용(無用)의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이 외부와 연결되는 특별한 순간은 오롯이 예술을 감상할 때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끔 해주는 매개가 바로 미술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미술은 그중에서도 가장 입체적이고 사려 깊은 수단인 것 같다. 나 또한 미술을 통해 영감을, 때로는 위로를 받곤 한다. 성인이 성장할 수 있는 법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미술을 통해 인간에 대해 배우고 타인을 공감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더라. 팬데믹을 관통하며 더더욱 확신했다. 우리를 진정으로 위안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과 예술뿐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