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오리지널리티③]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방울이 아니다

입력 : 2021.02.11 19:05

“생명이자 동시에 소멸”
점도, 형태, 지지체 등 다채롭게 변모해온 물방울 변천사
아트조선 공동 기획 TV CHOSUN 개국 10주년 특별 기념
‘더 오리지널’展 3월 9일부터 조선일보미술관

물방울 No. T-24, 마포에 유채, 100x81cm, 1976 /아트조선
물방울 No. T-24, 마포에 유채, 100x81cm, 1976 /아트조선
1970년대 40대 김창열이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갤러리현대
1970년대 40대 김창열이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갤러리현대
 
지난 1월 5일이었다. 김창열(1929~2021) 화백의 부음이 들려온 날이었다. 지난 반백 년 가까운 시간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을 빚어온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국내외 미술계는 숙연해졌다. 물방울은 물의 수많은 형태 중에서도 입김만으로도 사라져버릴 듯 가장 연약하다. 그러나 김창열의 화면에서는 보석처럼 언제나 찬란히 반짝이며 영롱한 빛깔을 보여줌과 동시에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충만함과 그득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김창열의 ‘물방울’은 그냥 물방울이 아니다. 미술비평가 이일은 “김창열의 회화에는 한정된 공간이 없다. 물방울 같은 이들 투명한 무기물이 정착하는 순간, 이들 물체는 그 실재감과 함께 ‘무(無)=공간(空間)’ 그 자체를 변질시키고 놀라우리만큼 신선한 시각 체험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라고 서술했다.
 
2019년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KIM TSCHANG-YEUL: New York to Paris’ 전경 /뉴욕=윤다함 기자
2019년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KIM TSCHANG-YEUL: New York to Paris’ 전경 /뉴욕=윤다함 기자
 
그는 1961년 파리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국제 미술계로의 진출에 대해 자신감을 얻고 도미를 결심한다. 1960년대 중반 뉴욕으로 건너간 김창열은 이 시기 주로 추상화, 그중에서도 옵아트적인 회화에 몰두했는데, 기하학적 조형을 반복시키며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를 연출하는 식이었다. 구불구불한 추상적인 형태를 두고 작가는 ‘창자의 그림’이라고 설명한 적도 있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일렁이는 듯한 구형 형태를 반복적으로 묘사하다가 이는 점차 물방울, 액상 등을 연상하는 구체적인 모양으로 변모했다. 화면 밖으로 흘러나올 듯한 구상적인 형태에 이른 뒤 물방울이 본격적으로 화면 위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일명 ‘물방울 화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73년 파리 놀인터내셔널(Knoll International)에서 물방울 그림을 첫선을 보이면서부터이지만, 그 태동을 알리는 작품은 뉴욕 시기를 포함해 파리 시기가 시작되는 1969년에도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티나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는 물방울 시리즈 이전의 작업이 다수 걸렸다. 이 작품은 물방울 작업을 본격 시작하기 직전의 그림으로, 물방울에 비해 다소 되직한 물성의 액상을 통해 물방울의 기원을 짐작해볼 수 있다. Procession, 1970, Acrylic and nitrocellulose lacquer on burlap, 162x80cm /뉴욕=윤다함 기자
티나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는 물방울 시리즈 이전의 작업이 다수 걸렸다. 이 작품은 물방울 작업을 본격 시작하기 직전의 그림으로, 물방울에 비해 다소 되직한 물성의 액상을 통해 물방울의 기원을 짐작해볼 수 있다. Procession, 1970, Acrylic and nitrocellulose lacquer on burlap, 162x80cm /뉴욕=윤다함 기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물방울이 처음부터 투명하게 빛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그것은 불투명한 색깔이었다. 앵포르멜 말기에 해당하는 1964년 작인 <제례>(캔버스에 유채, 162x130cm)는 점액질처럼 찐득하게 흘러내린 물방울을 표현한 것으로 피고름을 연상시켰다. 1970년에 그리기 시작한 밝고 투명한 물방울의 원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특기할 사항은 작가가 물을 단순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빛에 반응하고 투과하면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물의 특성을 빌려,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자 했다. 물은 본디 순수하고 온화하며 생명력을 지니면서도 강력한 힘과 에너지를 가진 요소이기도 하다. 액체 상태에서 기화되고 다시 이는 액체로 돌아오길 거듭하며 같은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물은 생명이면서 동시에 소멸이기도 한 것이다. 전쟁을 겪은 김창열에게 물방울이란 그로 인한 상실감과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작가는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하고 무(無)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불안도 공포도 허(虛)로 전복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초창기에는 물방울을 단일 소재로 삼아 투명함이나 반사되는 성질을 강조했다. 특히 마포나 나무판 등과 같은 거친 텍스처가 도드라지는 지지체를 사용함으로써 물방울의 영롱함을 더욱 부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작가는 프랑스 신문 ‘휘가로(Le Figaro)’ 위에다가 물방울을 그려 넣은 <휘가로지>(1975)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화면 안에 문자를 끌어들인다. 
 
지난해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The Path’ 전경. 이는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갤러리현대
지난해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The Path’ 전경. 이는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갤러리현대
 
그에게 문자는 물방울만큼이나 중요한 화두였다. 신문을 옮겨 쓰거나 글자를 해체해 화면에 그려 넣기도 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는 천자문이 고정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이치 등에 관한 동양사상의 정수를 담은 고시(古詩)로, 무한한 우주적 상징 체계를 동양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조부로부터 배운 천자문과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문명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천자문을 깨치던 배움의 원점으로 돌아가 정신적 수행을 실현하고자 한 작가적 의지가 읽힌다. 물방울과 문자와의 접점이 일견 성글게 보일 수 있으나, 작가가 애초에 물방울을 소재로 삼은 것 또한 물방울의 조형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차용하고자 했으므로, 이보다 더 직접적인 문자쓰기로 소재가 확대된 것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생전 작가는 “한자는 끝없이 울리고 끝없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 때문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The Path’ 전경. 이는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갤러리현대
지난해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The Path’ 전경. 이는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갤러리현대
 
김창열의 작업 일대에서 문자의 위치나 위상이 물방울의 그것에 비해 미진하다고 판단한 갤러리현대는 지난해 아예 ‘문자’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전시를 개최했다. 문자를 조명함으로써 물방울의 의미를 돌아보고 문자와 물방울 간의 연결고리를 견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공교롭게 이는 작가의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고, 마치 이를 예견하고 준비한 듯 김창열의 예술 생애를 다시금 정리하고 되짚는 주요한 전시 중 하나로 남았다.
 
SH87032,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1986 /아트조선
SH87032,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1986 /아트조선
 
TV CHOSUN 개국 10주년을 기념하는 아트조선 공동 기획 특별전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 더 오리지널’이 다가오는 3월 9일부터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는 김창열 화백의 가장 인기 있는 1970년대작 영롱한 물방울 그림이 걸리며, 이와 함께 자연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1980년대작도 공개된다. (02)724-7832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