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돈 버는 길”… ‘미술품 물납제’ 도입된다면

입력 : 2021.01.22 22:45

[정준모]
세금을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제도
“영국, 프랑스 등 ‘문화선진국’에선 이미 시행한지 오래”
“작품 확보 늘어나 국민 문화 향유권 증대”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국가보물 금동불상 두 점을 케이옥션에 내놓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사정은 이러했다. 간송미술관이 누적된 재정난을 해소하고 막대한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국보를 팔겠다고 한 것. 그러나 초유의 관심 속에 열린 경매에서 두 불상은 허망하게 유찰됐고 문화계는 다시 한번 탄식했다. 국보 두 점은 졸지에 갈 곳 없는 애물 처지가 된 듯했지만 여차여차 논의 끝에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입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융숭한 대접은커녕 골칫덩이로 일순 전락한 두 불상은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이 사태의 배경, 즉 세금 납부를 위해 국보를 사설 경매에 내놓았다는 점을 대두시켰다.
 
조세법상 세금은 현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나 상속세, 증여세, 재산세 등의 경우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물납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현행법에서 문화재나 미술품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보를 경매에 내놓아 현금화를 시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문화계와 정계를 중심으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광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문화재‧미술품 물납제가 포함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앞선 그해 10월 국회입법조사처도 입법·정책보고서를 통해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한 정책과 법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맞춰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제도 도입의 밑그림을 위한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박물관·미술관 상속세 물납 허용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자로 나서 미술품 물납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실제 이 조세제도는 영국, 프랑스 등 문화선진국에서 길게는 100여 년 전 먼저 시행돼 오늘날까지 안정적으로 운용돼 오고 있다. “소위 말해 짭짤하니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미술품 물납제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니까요. 득보다 실이 많았다면 그네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이 제도를 유지했을까요?” 정 미술평론가를 만나 미술품 물납제 시행으로 인한 구체적인 기대 효과를 들어봤다.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 200여 점으로 물납하며 건립됐다.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Béatrice Hatala, Konstantin Lucas Mikaberidze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 200여 점으로 물납하며 건립됐다.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Béatrice Hatala, Konstantin Lucas Mikaberidze
 
─미술품 물납제는 상속세 등을 미술품으로 대납하자는 취지다. 주요 골자를 되짚어준다면.
 
“현재 우리나라 상속법에 의하면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물납이 한정돼 있지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일본 등에서는 상속세 대신 문화재‧미술품도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록문화재인 국보나 보물이라 할지라도 물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비상장주식도 물납이 가능함에도 말이다. 물납제는 해당 문화재나 미술품을 국가가 별도의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도 소유함으로써 가치 있는 문화재‧미술품이 해외로 반출되지 않고 자국에 남도록 하는 방편인 동시에 국민 모두가 문화적 향수를 공유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데, 그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겁고 행복하게 자발적으로 내게 할 방법 중 하나다.
 
일단 이 제도는 숨어 있는 미술품을 양지로 끌어내려고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미술품은 사유화돼 있는 게 상당수인데, 이들 작품에 공공재로의 역할을 부여하고 공적 자산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도다. 또한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서다. 꼭 우리 전통 문화재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유명 작가의 작품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있다고 해보자. 이를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격이 상향되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긍지는 더 나아가 양극화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통합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해당 제도가 단순한 세법 개정을 넘어 궁극적으로 국민통합을 견인한다고 설명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부언한다면.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조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조선
“예전에는 잘 산다는 게 경제적으로 배부른 걸 뜻했는데, 정작 배가 불러보니 배만 부르다고 해서 만족할 수 없는 게 사람 아니던가. 인간에게는 정신적 양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대단한 성장을 이뤘다고 해도 국민이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건 문화 향유층의 저변 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적 허탈감을 채우고 허허함을 없애주기 위해서 물납제 도입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의 여파로 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갈등을 안고 있고 빈부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으로 분열되고 파편화돼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술관과 박물관은 이런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국가와 민족이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세워졌다. 예나 지금이나 분열을 치유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공동체 정신의 회복과 정립이며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바로 문화 예술이다.
 
예컨대, 프랑스가 시민혁명을 성공시키고 시행착오를 겪어 공화정을 완성시킬 때 국민통합을 위해 꺼낸 카드가 예술품이었다. 창조적인 문화재와 예술품은 국민이란 추상적 개념을 실재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증거물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문화유산을 함께 향유하며 국가 소속감과 자부심을 공유했다. 예술품을 두고 공공재라고 하지 않나. 당시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재와 미술품을 박물관에 전시해 공공화했고 프랑스인들은 이를 감상하며 계층 구분 없이 국민의 일원이란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던 거다. 왕과 귀족만이 즐기던 것을 일반 시민이 볼 수 있게 되며 계층 간의 위화감을 없앨 수 있었다. 작품 앞에선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다. 문화 예술은 지역감정, 세대 갈등 등 고차원의 정치적·사회적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열쇠이며, 이를 견인할 수 있는 것은 물납제다.”
 
─현금과 달리 미술품으로는 당장 눈앞의 국고가 차지 않아 제도의 당위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에 반박한다면.
 
“물납제의 시행은 오히려 국부(國富)를 늘리는 일이다. 나라 예산은 쓰면 없어지는 돈이잖나. 그러나 미술품은 다르다. 적어도 나라에서 물납으로 받아주는 정도의 미술품이라면 그 가격이 오르면 오르지 떨어질 일은 없다. 모네의 <건초더미(Haystacks)>(1890~1891)가 1986년 경매에서 253만달러로 낙찰됐는데, 2019년 다시 경매로 나왔을 땐 1억1070만달러에 팔렸다. 30여 년 만에 무려 40배가 뛴 거다. 김환기 작품도 최근 10여 년 사이 작품가가 폭등했다. 특히 제대로 된 문화재나 미술품 한 점 값에도 못 미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을 고려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물납제를 통해 보다 많은 양질의 예술품을 확보할 가능성을 높이고 이는 미술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져 세금으로 편성된 작품수집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로까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듯 물납제는 가만히 앉아 돈 버는 길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수십 년에서 100년 넘게 제도를 유지해오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로스차일드가가 1983년 상속세로 물납한 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1968)는 현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Musée du Louvre
로스차일드가가 1983년 상속세로 물납한 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1968)는 현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Musée du Louvre
 
─일찍이 제도가 자리 잡은 영국, 프랑스 등은 어떻게 운용돼 오고 있나.
 
“물납제를 처음으로 고안한 것이 영국이다. 19세기 후반, 많은 귀족과 부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급증했는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와 미술품이 대거 매각 위기에 놓였다. 이들 문화재와 미술품이 국외로 반출되고 뿔뿔이 흩어지는 걸 막기 위해 오늘날 물납제의 초석이 마련됐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로 정착되기까지 영국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일례로, 1977년 로스차일드가(Rothschild Family)의 성지인 멘트모어타워가 경매 매물로 나왔는데, 당시 상속인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였다. 본래는 물납제도로 상속세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정부와 협상이 결렬된 탓이었다. 결국 성과 성 내부를 채우고 있던 진귀한 문화재와 예술품 모두 소더비 경매에서 팔려나갔다. 심지어 그중에서 가치가 좀 떨어지는 가구와 미술품은 지역주민들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반출된 많은 예술품이 최근까지도 경매에 등장하고 있고 어떤 물품은 당시 경매총액에 달하는 금액으로 낙찰되기도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영국은 제도의 허점을 꾸준히 수정, 보완해왔다. 실제로 영국은 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문화재와 미술품 가격도 함께 상승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영국을 시작으로 물납제를 다른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968년 영국을 본떠 제도를 도입해 증여세는 물론 부유세까지도 물납이 가능하다. 만약 물납하는 미술품의 가치가 상속세보다 높을 경우 소장자에게 별도의 차액을 내어주진 않는데, 소장자가 해당 미술품 소장기관을 사전에 지정하면 수증 받는 기관에서 차액을 보상해주기도 한다. 또한 물납제 외에도 문화재 국외 반출을 방지하기 위해 국보를 기증할 경우 총액의 90%를 세금에서 감면해주는 파격적인 제도를 운용할 만큼 적극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프랑스 피카소미술관이 꼽힌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
 
“1985년 파리에 개관한 피카소미술관은 물납제도를 통해 아예 미술관 한 채가 설립된 경우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피카소 작품을 처분해야 할 상황에 놓였는데, 물납제를 통해 피카소 작품 200여 점으로 대납해 오늘날 피카소미술관이 세워질 수 있었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1968)는 로스차일드가가 1983년 상속세로 물납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단일 작품 사례야 셀 수 없이 많다.”
 
─미술품에는 상한가도 하한가도 없는 법이다. 미술품의 금전적 가치에 대한 절대적 평가와 객관적인 가격 산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테면 라면 값을 두고도 어떤 라면은 100원이라면 다른 라면은 그의 두 배인 200원도 있다. 누가 라면 값을 정해주는 게 아니지 않나. 어느 물품이든 ‘객관적인 가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시장과 공급과 수요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을 산정하는 거다. 전문 공무원을 선발할 것이 아닌 이상, 전적으로 민간 위원으로 구성해 관련 기구와 위원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제도를 시행 중인 타국들도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국가기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의사도 사람이라 오진할 확률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픈데 병원을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문가를 믿고 맡겨야 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