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화 물들인 핀란드 조명… ‘부조화 속의 조화’

입력 : 2021.01.04 22:48

‘타임 인 스페이스’展
‘동서고금’ 어우러진 회화, 아트퍼니처, 오디오 등
30일까지 삼청동 PKM갤러리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암체어에 앉아 통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볕을 쬐고 있노라면 팬데믹도 잊은 채 세상 평화롭게만 느껴지고, 거품이 방울방울 맺힌 듯한 헬레나 티넬(Helena Tynell)의 빈티지 조명이 그윽하게 비추는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 세심대> 앞에 서있자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야, 여기가 내 방이면 참 좋겠네.”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겸재 정선, 장동팔경 세심대, Ink and water colour on paper, 58x37cm(work), 93x53.5cm(frame), 17~18th c. /PKM갤러리
겸재 정선, 장동팔경 세심대, Ink and water colour on paper, 58x37cm(work), 93x53.5cm(frame), 17~18th c. /PKM갤러리
 
겸재 정선부터 샘바이펜까지, 달항아리부터 빈티지 스피커까지. 분명 전시장은 한 곳인데, 공간 구석구석 복수의 시공간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탐나는 근사한 방을 꾸려놓은 것 같은 전시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타임 인 스페이스’란 전시 타이틀이 말하듯,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에 탄생한 미술품과 가구, 음악 사운드는 단순히 주거 공간의 장식을 위한 요소로 머무르는 것이 아닌, 시간성의 상호관계 속에서 의미 있게 공존하고 서로 공명한다. 이로써 공간이 사용자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인문학적 성찰과 미적 쾌감을 제공하는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서승원, 동시성 17-363 Simultaneity 17-363, Acrylic on canvas, 116.7x90.9cm, 2017 /PKM갤러리
서승원, 동시성 17-363 Simultaneity 17-363, Acrylic on canvas, 116.7x90.9cm, 2017 /PKM갤러리
 
자연광이 들어오는 전시장 지상층에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비롯해 윤형근, 서승원, 백현진, 정영도 작가의 회화가 내걸렸다. 각 회화는 아트퍼니처, 소품, 오브제 등과 ‘짝지’를 이뤄 생각지 못한 묘한 조화를 빚어낸다.
 
이를테면, 진경산수화가 빈티지 유리 램프와 어울려 동서고금의 하모니를 보여준다면, 다채로운 색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영도의 회화 <Mud Play in My Place> 옆에는 안더스 페어손(Anders Pehrson)의 1960년대 황동 빈티지 램프가 놓여 호화로움을 배가하는 식이다. 은근한 정취가 배어 나오는 서승원의 회화 <동시성>은 톡톡 튀는 오렌지 컬러가 인상적인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의 빈티지 조명과 만나 부조화 속의 조화를 뽐낸다.
 
여기에 권대섭의 달항아리, 미국 작가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의 책꽂이 조각, 덴마크 디자이너 폴 케홀름(Poul Kjærholm)의 데이베드, 그리고 1940년대 생산된 빈티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빛내며 품위 있는 현대의 주거 공간을 완성한다.
 
백현진, Suicide-preventive Painting, Oil paint on canvas, 160x160cm, 2020 /PKM갤러리
백현진, Suicide-preventive Painting, Oil paint on canvas, 160x160cm, 2020 /PKM갤러리
정영도, Mud play in my place, Acrylic, spray paint, charcoal, graphite and color pencil on canvas, 208x185cm, 2020 /PKM갤러리
정영도, Mud play in my place, Acrylic, spray paint, charcoal, graphite and color pencil on canvas, 208x185cm, 2020 /PKM갤러리
 
전시장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로코코 양식 패턴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벽지로 두른 홈 바(Home Bar)가 관람객을 맞는다. 공간 중심부로 들어가면 젊은 디자이너 소목장세미의 바 테이블과 선반,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의 바 스툴이 어느 셀럽의 집에 실제로 있을 법한 홈 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영국 빅토리안 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해 20세기 초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환자용 의자로 사용해 더욱 유명해진 체스터필드 소파가 계단 아래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이외에도 권진규의 드로잉, 영국 작가 대런 아몬드(Darren Almond)의 거울 작업, 이원우의 부조를 비롯해 젊은 콜렉터 사이에서 인기작가로 떠오른 샘바이펜(Sambypen)의 강렬하고 위트 있는 캐릭터 회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1월 3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타임 인 스페이스: 더 라이프스타일’ 전시 전경 /PKM갤러리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가 직접 나서 기획한 이번 전시는 팬데믹 시대에 이전과는 달라진 주거공간의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 박 대표는 “격리와 비대면 일상이 뉴노멀이 된 지금, 한 개인이 사적인 주거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번 전시에서 내밀한 개인 공간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현대인에게 때론 집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다채로운 시대와 매체가 공존하는 작품들이 내걸린 ‘집 같은’ 전시장에서 위안과 영감을 주던 집의 본디 의미를 다시 상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30일까지.
 
권진규, 달을 보는 기사, Ink on paper, 22.5x28.3cm, 1956~1957 /PKM갤러리
권진규, 달을 보는 기사, Ink on paper, 22.5x28.3cm, 1956~1957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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