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0.15 20:36
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 영웅, 예술’展
출품작 150여 점 작품가 1조원… 바스키아 국내 최대 규모 전시
생전 마지막 개인전 발표작, 2000억원 대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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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자기 그림을 2달러에 살 사람이 혹시 있나 찾아보고 있었다. 요즘은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1만5000달러에 팔리고 있는데, 정작 그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작품을 2달러에 사줄지 궁금해했다.”
1983년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와의 일화를 이렇게 술회했다. 30여 년 전, 2달러에 작품을 팔고 싶었던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1960~1988). 그의 작품 1조원어치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8일 개막한 바스키아의 대규모 개인전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 영웅, 예술’이 일평균 관람객수 2000명을 기록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코로나19로 전시가 축소되거나 연기되는 가운데, 초대형 스타 작가 바스키아의 블록버스터 전시에 주말 티켓 완판은 당연지사, 평일에도 전시장이 붐빌 정도다.

이번 전시는 150점이 넘는 바스키아의 원화로 꾸려졌다. 작품을 전시하는 데 있어서 ‘원화’라는 표현이 다소 아이러니할 수 있지만, 유명 작가일수록 국내에서 원화로만 전시가 이뤄지는 것이 여전히 귀하고 이례적인 것이 사실이다. 판화로 대체되거나 비교적 유명세가 떨어지는 낯선 작품이 걸리기 일쑤기 때문.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바스키아의 소품부터 대작까지, 회화부터 세라믹까지 눈에 익은 다채로운 작품이 내걸렸다. 특히 작업 초창기부터 전성기, 작고 전까지의 바스키아의 작업 일생을 아우르는 자리로는 국내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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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남짓의 짧은 작업 기간, 3000점 넘는 작품을 남겼다. 다작한 만큼 대표작도 여러 점이다. 이번 전시에는 바스키아의 화면에서 빠지지 않는 해골과 인체해부도, 왕관, 공룡 등 그의 상징적인 이미지와 기호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또한 1988년 뉴욕 베르제 배그후미안 갤러리에서 열린 생전 마지막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Victor 25448>(1987)도 볼 수 있다. 출품작 중 가장 비싼 작품가를 자랑하는 폭 4미터에 달하는 대작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1981)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해골과 인체 해부도를 즐겨 그렸던 바스키아지만, 그의 화면에서 온전한 형상을 갖춘 인간 형태는 찾기 어려운데, 이 그림에는 머리, 몸통, 팔다리가 제대로 달린 해골이 등장한다. 작품가는 2000억원에 이른다.
대체 바스키아의 이 많은 원화를 어디에서 수급해온 것일까. 이번 전시 출품작 대부분은 유명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호세 무그라비(Jose Mugrabi)의 컬렉션이다. 세계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설이 돌 정도로 무그라비가 소장한 미술 작품의 수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작가 유족이 운영하는 바스키아 재단 등에서 작품을 대여해와 전시가 성사됐다.

앤디 워홀과 협업한 작품 5점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워홀이 먼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면 바스키아가 마지막으로 거친 붓질로 글씨를 쓰고 지워 작품을 완성했다. 워홀에 의해 창조된 대중문화의 상품 이미지들은 바스키아에 의해 지워지고 채워지면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했다. 워홀의 기계적인 이미지에 바스키아의 저항적이고 즉흥적인 붓질을 결합해 대중문화와 물질주의의 양면적 모습을 폭로하는 식이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 2년 동안 두 천재 작가는 150점이 넘는 작품을 함께하며 서로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고받았다.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예술가와 교류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온 워홀은 젊은 바스키아를 통해서 회화의 힘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바스키아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워홀의 인정을 받으면서 드로잉과 콜라주, 실크스크린 프린트와 아상블라주까지 다양한 실험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후 1987년 워홀이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우정은 계속됐다. 하지만, 워홀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에 빠진 바스키아는 은둔생활을 하던 중, 다음 해 결국 약물 과다로 유명을 달리했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텍스트와 자유로운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바스키아는 텍스트와 드로잉을 토대로 스프레이, 오일 파스텔, 크레용, 유화와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즉흥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의미를 생성한다.
상품에 상표를 붙이듯이 화면에 그린 이미지에 그와 연관된 단어, 문장을 재조합한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문장들과 부분 부분이 지워진 단어들은 보는 이에게 그 의미를 상상하게끔 한다. 상품 박스에 있는 제품 설명서부터 식품 구성성분, 광고 문구부터 해부학, 지리학, 연금술, 지도, 백과사전과 성경에 이르기까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텍스트를 화면에 옮기곤 했다. 또한 텍스트 위에 선을 긋거나 덧칠을 해서 글자를 지우는데, 마치 이미 완성된 그라피티를 지우고 그 위에 덧그리는 거리미술과도 같은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의 의미를 약화시키기도 했다.

사후 3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바스키아의 작품의 독창성과 천재성은 유일무이하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산업화로 인해 변화된 제작 방식과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를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조합해 시각예술의 새로운 지평과 가능성을 열었다. 논리적인 사고의 틀을 전복해 기성 가치를 뒤흔드는 그의 작품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다. 전시는 내년 2월 7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관람은 온라인을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1만~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