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여성, 개인… ‘캔버스들’에 층층이 쌓인 이야기

입력 : 2020.08.27 02:47

[윤향로]
“역사를 참조하고 현재를 투영했다… 자화상 같은 전시”
개인전 ‘캔버스들’, 9월 27일까지 학고재

ː)◆6F-1, 2020, 캔버스에 엡손 울트라크롬 잉크젯, 아크릴릭, 유채, 40.9x31.8cm ⓒDocuments Inc.
ː)◆6F-1, 2020, 캔버스에 엡손 울트라크롬 잉크젯, 아크릴릭, 유채, 40.9x31.8cm ⓒDocuments Inc.
 
윤향로(34)의 회화는 ‘스크린샷’과 같다. 그는 이전 세대 한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활동을 정리한 책 내용을 활용해 이를 화면에 반영한다. 즉, 타인이 참조한 미술사적 요소를 재참조하는 것인데, 미술사적 레퍼런스에 윤향로란 작가 개인의 삶의 서사를 연결 짓는 행위를 반복하며 캔버스 위로 층층이 회화와 드로잉을 쌓는다. 앞선 세대 작가의 기록으로부터 현재 그의 삶으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연대표 위에서 캡처한 스크린샷들을 한 화면 위에 한데 중첩해 놓은 셈이다.
 
화면 위로는 크게 세 개의 층이 쌓이는데, 각 층위는 저마다 다른 서사와 표현을 드러낸다. 책에서 발췌한 타인의 기록을 기반으로, 그 위에 윤향로가 에어브러시로 채색한 회화의 층이 쌓인다. 마지막으로 그림 표면에는 어린아이의 낙서를 모아 오일바로 재현한 드로잉이 얹힌다. 
 
윤향로 개인전 ‘캔버스들’ 전경 ⓒDocuments Inc.
윤향로 개인전 ‘캔버스들’ 전경 ⓒDocuments Inc.
 
그는 대중문화, 미술사, 패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끌어온 요소를 작업의 소재로 쓰는데, 이는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로서의 기성 이미지를 참조하고 재해석하고 변주해 자신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같다. 그는 자신이 ‘유사 회화’라고 명명한 개념 아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동시대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기술적 측면에 주목하고, 미술 외 다양한 분야에서 참조한 요소를 회화 언어로 변주한다. 회화의 층위와 평면성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온 만큼, 그의 그림에서는 화면 안팎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려는 작가 고유의 관점과 확장된 작업의 범주를 읽을 수 있다.
 
ː)♥atypical-F2, 2020, 캔버스에 엡손 울트라크롬 잉크젯, 아크릴릭, 유채, 90x160cm ⓒDocuments Inc.
ː)♥atypical-F2, 2020, 캔버스에 엡손 울트라크롬 잉크젯, 아크릴릭, 유채, 90x160cm ⓒDocuments Inc.
 
윤향로가 새롭게 제작한 연작을 내걸고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 ‘캔버스들’에서 통해 최신 연작을 최초로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자신의 자화상과 같다고 설명한다.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겪은 삶의 사건들을 작업의 촉매로 활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제작에 앞서 갤러리 본관의 모든 내벽을 감싸는 ‘디지털 매핑 이미지’를 만들었다. 전시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가상의 캔버스다. 그리고 이 가상 공간의 벽면으로부터 작은 조각 이미지를 오려내 캔버스 규격과 표준 화면비를 기준으로 17종의 판형, 100여 개의 조각을 추출했다. 이를 실제 캔버스 천에 출력해 전시 공간의 해당 자리에 설치했다. 자신이 구축한 가상 세계를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작품은 0호에서 50호까지의 캔버스를 동선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했다. 구성상 여백을 두기 위해 61점의 작품을 선별했다. 몇몇 화면 위 푸른 직사각형이 눈에 띈다. 매핑 작업 시 프로그램 특성상 서로 다른 벽면에 같은 이미지가 생겨나는데, 이 ‘공통분모’ 영역을 푸른 반투명 막으로 형상화했다. 캔버스들 간 구조와 연결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윤향로 개인전 ‘캔버스들’ 전경 ⓒDocuments Inc.
윤향로 개인전 ‘캔버스들’ 전경 ⓒDocuments Inc.
 
특수문자 따위가 엉켜 암호문을 연상하는 작품명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는 자화상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설치 벽면을 가리키는 도형, 캔버스 규격을 나타내는 호수의 조합이란다. 이를테면, <ː)◆10F-3>(2020)는 ‘◆’로 지칭한 벽면에 걸린 ‘10F’ 규격의 캔버스 중 세 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무슨 의미인지 해독하는 재미는 덤이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윤향로 작가 /학고재갤러리
윤향로 작가 /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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