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11 14:00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는 작가의 작품과 작업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일상의 기록을 소개하는 코너로 Art Chosun에서 매주 2회 (화,목) 총 6주간 연재됩니다.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①] Crescent St역
겨울 냉기로만 가득 찬 작은 동네의 겨울.
차이나타운에서 지하철을 타면 동쪽 Fullton St의 맨 끝 브루클린, 이곳에도 한국 사람이 살고 있었다. 중국 사람도 살지 않는 곳에 한국 사람이 살고 있었다.
역 옆에 있는 Deli, 검은 그림자로 가득 찬 철길 아랫동네에 그렇게 한국인은 델리와 세탁소, 컴퓨터 부품가게 까지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무슨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는 그곳이 얼마나 낮은 직급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격정적이고 매섭게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그런 동네, Fullton St의 맨 끝자락에 붙어있는 동네.
1900년대 초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철길 따라서 지어놓은 집들은 지금은 그들이 떠나고 이주해 온 흑인들이나 제3국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체로 차지하면서 백인들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됐다. 정말이지 백인들은 이 동네에 눈 닦고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거칠고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의 눈망울은 검은 얼굴 속에서 유난히 광채가 나듯 부리부리했다.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두 뺨에 부딪힐 때 얼음 막대기 같은 철제난간에 앉아서 Ppangmi를 기다렸다.
차이나타운에서 지하철을 타면 동쪽 Fullton St의 맨 끝 브루클린, 이곳에도 한국 사람이 살고 있었다. 중국 사람도 살지 않는 곳에 한국 사람이 살고 있었다.
역 옆에 있는 Deli, 검은 그림자로 가득 찬 철길 아랫동네에 그렇게 한국인은 델리와 세탁소, 컴퓨터 부품가게 까지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무슨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는 그곳이 얼마나 낮은 직급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격정적이고 매섭게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그런 동네, Fullton St의 맨 끝자락에 붙어있는 동네.
1900년대 초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철길 따라서 지어놓은 집들은 지금은 그들이 떠나고 이주해 온 흑인들이나 제3국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체로 차지하면서 백인들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됐다. 정말이지 백인들은 이 동네에 눈 닦고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거칠고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의 눈망울은 검은 얼굴 속에서 유난히 광채가 나듯 부리부리했다.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두 뺨에 부딪힐 때 얼음 막대기 같은 철제난간에 앉아서 Ppangmi를 기다렸다.
여기에 사는 한국인들은 30년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으며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자식들을 모두 미국의 명문대를 다 보내고 맨해튼 외곽에 번듯한 집들도 다 가지고 있는 알부자들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허름한 빈민 동네에서, 그야말로 뉴욕에서 최말단의 빈민가에서 살아남은 초인적 의지의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자 너무 반가워했고 주저리주저리 여기 들어온 이민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한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겨울은 나에게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아닐 수 없었다.
얼어붙은 철제 Subway 레일. 마찰음이 가까워져 올수록 차갑게 홍조 띤 얼굴로 만날 수 있겠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자 너무 반가워했고 주저리주저리 여기 들어온 이민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한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겨울은 나에게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아닐 수 없었다.
얼어붙은 철제 Subway 레일. 마찰음이 가까워져 올수록 차갑게 홍조 띤 얼굴로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인이 하는 치킨집을 지나 세탁소 이층집 가는 길에 얼어 붙은 손을 내 코트주머니에 넣고는 말없이 걸었다. 무능력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알리손은 네일 가게에서 힘들게 집세와 작업실 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운 겨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가 네일 가게에서 일하던 겨울날 그녀의 생일 12월 22일. 가진 돈을 털어서 450불짜리 페라가모 핸드백을 Fifth Avenue 백화점에서 샀다.
그의 가게 앞에서 불러내어 커피숍에서 선물을 주었던 일도 거기 브루클린의 끝자락 센텐더러 역 세탁소집 이층에 있을 때였다.
그렇게 밝으면서도 우리의 생활을 위해서 경제적인 걱정을 했던 알리손. 지금은 버지니아 어느 근방에서 잘살고 있겠지. ‘그때 정말 고마웠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나의 알리손 안녕.
알리손은 네일 가게에서 힘들게 집세와 작업실 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운 겨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가 네일 가게에서 일하던 겨울날 그녀의 생일 12월 22일. 가진 돈을 털어서 450불짜리 페라가모 핸드백을 Fifth Avenue 백화점에서 샀다.
그의 가게 앞에서 불러내어 커피숍에서 선물을 주었던 일도 거기 브루클린의 끝자락 센텐더러 역 세탁소집 이층에 있을 때였다.
그렇게 밝으면서도 우리의 생활을 위해서 경제적인 걱정을 했던 알리손. 지금은 버지니아 어느 근방에서 잘살고 있겠지. ‘그때 정말 고마웠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나의 알리손 안녕.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②] Paris Meudon의 치과의사 베르니
26년 전, 파리 Meudon에 있을 때 옆집에 사는 치과 의사 집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왔었다. 그 치과 의사는 나의 이빨을 뽑아준 사람인데 그야말로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치과였는데. 그는 이미 늙어있었고 모든 도구는 낡고 기력을 잃은 내부는 그야 말로 작가 에드거 앨렌 포가 쓴 단편 소설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실내 정경, 죽음의 정적이 감도는 치료실이었다. 마치 낡은 흑백사진처럼.
우리는 아침마다 만나서 조금은 서툰 프랑스어로 시사를 얘기하며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내 이빨을 마취도 없이 생니를 뺀찌로 뽑았다.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다행인 것은 그가 뽑은 그 이빨은 아래 앞니로, 엇박자난 중간니를 뽑은 바람에 중간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는데 다행인 것은 교정을 하고 나니 아랫니가 가지런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와 인연으로 자기 집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친구인데 놀러 와서 하룻밤 같이 자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가 그려주고 간 스케치가 있는데 꽤 비싸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좋아한다 (그때는 그 뜻을 몰랐지만) 등 이런 얘기를 하면서 너는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 이미 프랑스의 현대미술은 죽었다 등 시사적인 얘기를 했다.
다행인 것은 그가 뽑은 그 이빨은 아래 앞니로, 엇박자난 중간니를 뽑은 바람에 중간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는데 다행인 것은 교정을 하고 나니 아랫니가 가지런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와 인연으로 자기 집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친구인데 놀러 와서 하룻밤 같이 자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가 그려주고 간 스케치가 있는데 꽤 비싸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좋아한다 (그때는 그 뜻을 몰랐지만) 등 이런 얘기를 하면서 너는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 이미 프랑스의 현대미술은 죽었다 등 시사적인 얘기를 했다.
여하튼 힘들 때 내 생이빨을 뽑아서 한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한 이탈리아계의 프랑스인 치과의사이자 베이컨의 친구였던 베르니. 지금은 그도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일요일이면 근처에 있는 러시아 성당의 종소리가 구슬펐던 파리의 언덕 Meudon이라는 동네의 5층 방에 살았던 나, 그때 만났던 동네 친구들 Au revoir, à bientôt.
일요일이면 근처에 있는 러시아 성당의 종소리가 구슬펐던 파리의 언덕 Meudon이라는 동네의 5층 방에 살았던 나, 그때 만났던 동네 친구들 Au revoir, à bientôt.
◆ ARTIST INFO
http://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0/20200810036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