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03 21:01
오민 개인전 ‘초청자, 참석자, 부재’
듣기 어려운 음악 통해 ‘보는 음악’ 실험
9월 27일까지 플랫폼엘
듣기 어렵거나 소리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은 예스다. 이를 위해 오민(45)이 준비한 다섯 가지 재료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 △있는 것으로 가정될 뿐 실제 발생하지 않을 소리 △다른 소리를 통해 유추해 들어야 하는 소리 △소리가 나는데도 잘 들리지 않는 소리 △이 모든 것이 엮여 총체적으로 듣기 어려워진 소리다.

영상과 퍼포먼스를 매체로, 미술과 음악의 교차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가져온 오민이 이번에 주목한 것은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 즉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음악의 언어와 구조를 작업에 대입한다. 음악의 보편적인 구조를 활용해 불안의 감각을 다루거나 연주자로서의 태도와 규칙 등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는데, 특히 연주자의 움직임과 무용가의 움직임, 무대의 안과 밖의 모습을 그만의 시선으로 영상에 담거나 공연자를 통해 표현해왔다. 미술이 아닌 피아노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은 그의 작업 세계를 이루는 기반이다.

2018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의 전시 ‘연습곡(Étude)’ 이후 2년 만에 마련된 개인전 ‘오민: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가 서울 강남구 언주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총 다섯 곡의 음악으로 구성된 <부재자>와 그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인 <참석자>, 그리고 그 영상의 설치를 전환하는 퍼포먼스인 <초청자>의 도큐멘테이션 영상과 함께 작업을 위해 작가가 창작한 스코어(Score)를 선보인다.
이번 신작을 통해 음악의 구조와 형식을 작업의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것에서 더 나아가 ‘듣기 힘든 소리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주제로 음악의 범주 자체를 확장하며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소리로 듣는 음악을 넘어 눈으로 보이는 음악에 집중하며 시간과 공간, 몸, 움직임, 소리, 이미지 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정교한 스코어를 만들고 이는 작업을 구축하는 원천이 된다. 스코어를 비롯한 작업의 결과물은 시간이 촉발하는 불안의 감각과 운동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구체적인 장면과 추상적 관계의 경계,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특히 이번 출품작들 역시 그의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각각 독립적인 작업으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또 연결된다. <부재자>는 <참석자><초청자>의 기반이 되고, <참석자>는 <초청자>의 일부로 구성된다.
<부재자>는 오민이 작곡가 문석민에게 듣기 어려운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작곡해 줄 것을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문석민과 함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재료를 찾아 다섯 곡으로 구성된 음악 <부재자>를 완성했다. 이렇듯 듣기 어려운 소리를 재료로 완성된 <부재자>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참석자>다. <참석자>는 음악을 둘러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음악을 듣는 방식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참석자>에서 연주자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며, 작가는 관람객이 악기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니라 움직임(진동)과 시공간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소리를 듣기 어렵게 만든 <부재자>를 연주하는 각각의 연주자는 자신만의 규칙을 생성해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완주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관람객은 이러한 미묘한 움직임을 통해 소리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초청자>는 <참석자>를 상영하기 위해 제작한 가벽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여러 형태의 관계들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퍼포먼스다. 음악 연주자의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에서 태동해 연주자 간의 관계, 시간과의 관계, 관객과의 관계 등 관람하는 시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관계까지 포괄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진행됐던 퍼포먼스 기록 영상이 상영된다.
<초청자>는 영상의 상영과 그 영상 설치를 전환하는 두 개의 막으로 구성된다. 1막은 <부재자>의 구성에 따라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지고 다음 장으로 전환되는 순간 2막의 장이 교대로 삽입되며 전개된다. 장이 전환할 때마다 관객은 계속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듣기 어려운 소리를 듣고 보기 위한 능동적인 자세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실제로 관객은 영상의 설치가 바뀔 때마다 움직이는 무대를 따라 공연자와 장비, 무대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신이 관람할 위치와 순간을 점유할 수 있다.

<초청자><참석자><부재자>를 위해 창작한 스코어들도 함께 전시된다. 오민의 스코어는 악보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오선보와 음자리표 등 보편적인 음악 기호가 아닌 직선과 곡선, 문자, 화살표, 도형, 이미지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이는 그래픽 악보라 불리며 실제로 악보를 그리는 데 활용되는 형식이기도 하다. 그는 스코어를 자신의 콘셉트를 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협업자와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자 공연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오민의 이번 작업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유도한다. 소리뿐만 아니라 신체, 움직임, 공간까지도 확장된다. 작품마다 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온 오민의 그것은 모두 유기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곤 했다. 지난 작품을 통해 공연을 구성하는 요소와 그 관계, 관련자의 역할과 태도, 무대 밖의 공간과 시간의 요소를 관찰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아이디어나 질문을 영상이나 공연을 구성하는 재료로 사용해왔다. 그리고 이번 신작 역시 그 연장선에 있으며, 전작과 구별되는 새로운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