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Power of Crew Culture②] 서로 다른 영역의 섞임 속, 새로운 시너지 만들어가는 예술가 집단

입력 : 2020.07.08 14:56

[밴드바우어(BANDBOWER)]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고단한 숙명의 예술가들. 이러한 독자적인 작가 정신은 이들을 일컫는 대명사였다. 그러나 요즈음 생각과 목적이 비슷한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프로젝트 팀, 아티스트 컬렉티브, 크리에이티브 그룹 등 다양하게 일컬어지는 예술가 집단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소위 ‘크루 문화’라고 명명되는 이러한 흐름은 과거 힙합 신에서 래퍼들에게 비트를 만들어줄 프로듀서가 필요하고, 무대에서는 완성된 비트를 틀어줄 DJ가 필요하기에, 음악적 취향과 방향성이 잘 어우러지는 몇몇이 모여 하나의 무리를 형성한 것에 빗대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섞임 속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예술가 집단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밴드바우어(Bandbower), 지난해 서울 논현동의 전시 공간 플랫폼엘에서 열린 전시 <Birds Eye View>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Bandbower), 지난해 서울 논현동의 전시 공간 플랫폼엘에서 열린 전시 /밴드바우어
 
일상의 순간을 사진으로 ‘캡처’해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소셜미디어 시대. 인스타그램으로만 하루에 약 40억 개의 이미지가 포스팅된다는 요즘, 일정한 틀의 사진과 짧은 영상을 통해 정보가 직관적으로 전달되다 보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강하게 시각적인 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삶은 본질적으로 모든 감각의 총합, 그 이상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우리네 일상에서 소외된 감각을 제대로 소환할 수 있을까. 3인조 크리에이티브 그룹 밴드바우어(Bandbower)의 고민과 아이디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밴드바우어 멤버들. 왼쪽부터 조각·설치미술가 고요손(Goyoson), 공간 연출가 승택(Seungtaek), 싱어송라이터 샤이 아시안(Shy Asian)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 멤버들. 왼쪽부터 조각·설치미술가 고요손(Goyoson), 공간 연출가 승택(Seungtaek), 싱어송라이터 샤이 아시안(Shy Asian) /밴드바우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연결한 MZ세대의 특별한 조합
 
‘초연결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에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보다가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이른바 ‘MZ세대’에 속하는 고요손(Goyoson), 샤이 아시안(Shy Asian), 승택(Seungtaek)으로 구성된 밴드바우어도 그렇게 탄생했다.
 
2년 전쯤, 이들은 인스타그램상에서 서로의 취향과 결을 관찰하다가, DM으로 연락해 만남을 가졌다. 조각과 설치미술을 전공한 고요손, 싱어송라이터 샤이 아시안, 무대 디자인을 공부한 승택은 서로의 나이와 출신을 밝히지 않은 채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할까”라는 누구나 20대에 한 번쯤은 고민할 법한 공통의 질문을 안고 1여 년 동안 매일 소통했다. 서로의 생각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며 합을 맞추다가 지금의 그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밴드 바우어, 360도로 회전하며 빛의 반사를 이용해 눈밭의 영롱함을 표현하는 조각 오브제 /밴드바우어
밴드 바우어, 360도로 회전하며 빛의 반사를 이용해 눈밭의 영롱함을 표현하는 조각 오브제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라는 이름은 승택이 오래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바우어새(bowerbird)’의 특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새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무려 10개월에 걸쳐 자신이 물어온 잡동사니, 이를테면 열매와 꽃, 풀잎과 나뭇가지 등으로 멋지게 둥지를 꾸미는데, 이 ‘장식물’이 마치 저마다의 개성과 예술성을 지닌 창작품 같다고. 밴드바우어가 추구하는 방향 역시 각자 고유의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협의와 소통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바우어새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퓨처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전시 <춘몽(春夢)> /밴드바우어
지난 5월 퓨처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전시 <춘몽(春夢)>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 전시 <춘몽(春夢)>의 비행 지형도 일부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 전시 <춘몽(春夢)>의 비행 지형도 일부 /밴드바우어
 
사운드를 통한 리얼타임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다준, 실재를 능가할 만한 시공간의 폭과 구체성을 지닌 다양한 경험은 오히려 시각을 제외한 어떤 감각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소외된 감각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밴드바우어는 요즘 특히 ‘소리(sound)’에 관심을 갖고 공동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사실 필자가 그들의 작업 세계를 접하고 끌리게 된 계기도 바로 ‘사운드’였다. 지난달 서울 성수동 거리를 지나가다가 희뿌연 스모그에 뒤덮인 전시 공간을 보고는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갔다. 흐린 시야 사이로 다양한 조각적 형태의 설치물과 전자오르간, 전자기타 등이 펼쳐져 있는 공간. 누군가 살며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편히 앉아 소리를 감상해보라고 하기에, 간만에 오롯이 소리에 집중했다. 유리구슬이 떨어져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바람과 풍경 소리 등 다양한 사물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공기의 흐름이 ‘소리’로 다가왔다.
 
밴드바우어, 분수가 나오는 사운드 오브제 /밴드바우어
밴드바우어, 분수가 나오는 사운드 오브제 /밴드바우어
 
이렇듯 밴드바우어는 자체 제작한 악기 오브제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소리를 더욱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치와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함께 구성한다. 그렇게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풍경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간다. 감각의 증폭을 위한 오브제로 구성된 공간에서 편안하고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소리를 접하노라면 머리로 이해하는 예술이 아니라 감각을 건드리는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
 
밴드바우어는 지난해 현대미술 전시 공간인 플랫폼엘에서 실시한 다원 예술 분야의 기획 공모에서 최우수 작가 팀으로 선정됐다. 이들은 전시마다 라이브 공연을 통해 소리에 대한 진정성 있는 경험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밴드바우어의 작업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을 바탕으로 한 우리네 삶을 가장 원시적이고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게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본 기사는 아트조선x스타일조선 공동 기획 일환으로, <스타일조선일보> 2020년 7월호(207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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