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07 17:31
서울대미술관 ‘작업’展
‘머릿속 예술’ 아닌 신체 통한 작업 행위 재조명
수백만 개 색채를 구현하는 전자 팔레트가 등장하고 증강현실과 가상현실로 작품을 감상하는 시대에 ‘손작업’은 시대역행적으로 취급받을 만큼 미련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땀과 노동이 없는 작업이란 이진우에게 공염불일 뿐이다. 그는 머리 없이 몸으로 그린다. 지름길이나 샛길 없이 온몸을 내던져 쇠솔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작업할 뿐이다.
미술가의 작업이란 무엇이며, 다른 작업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고도로 발달된 기술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왜 미술가는 여전히 신체를 통한 작업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미술관이 작가의 신체와 작업에 주목한 기획전 ‘작업(作業, Art Work)’을 개최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태서 서울대미술관 학예사는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늘날 현대미술이 실제 작가의 작업 행위가 누적화된 결과보다는 아이디어와 개념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신체에 다시 주목하고자한다.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내는 동작, 즉 작가들의 행위와 더 나아가 작가의 인생이 재조명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조형이 개념의 유희로, 신체적 경험이 머릿속 계산으로, 형태와 색채가 태도로 쪼그라들고 홀쭉해진 역사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 발원한 탈오브제, 비물질 예술, ‘머릿속’ 예술에 가속도가 붙은 시대, 그러나 태도가 전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작업이 누락되거나 쇠락해온 예술의 역사, 뒤샹의 결정적 행보로부터 잭슨 폴락과 도널드 저드, 존 케이지와 조셉 코수스와 빌 비올라를 스쳐온, 마치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린 것처럼 과정 없는 결실들이 쏟아져 내렸던 시간대에 대한 재인식의 요구”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관통하고 있는 지금, ‘신체’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것은 관념이 아닌 신체이기 때문이다. 심 관장은 “전시 참여 작가 14인은 서구적 시각에 기대온 국내 미술계에서 한때 비주류, 타자로 분류되는 경험을 감내해야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이들의 더딘 행보, 즉 ‘뒤늦은 작업’에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가 요구하게 될, 국제 예술의 새로운 규범이 될 만한 정신적 자산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작업으로부터 오는 역설적인 느림과 더딤, 그로 인한 고유한 지연으로 인해, 예술은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특권을 획득하게 된 셈이다.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라는 전장에서 치른 치열한 교전의 경험을 기록한 14인의 작업이 △저항 △역류 △고독 세 가지 구성으로 나눠 전시된다. 본격 관람 전에는 각 작가들의 소개글과 소품을 함께 미리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이해를 돕는 일종의 ‘인트로’ 공간도 준비됐다.
'저항‘에는 이응노, 나혜석, 장욱진, 조성묵, 구본주의 작품이 걸렸다. 이응노의 <군상> 회화와 조각을 비롯해 나혜석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역류’는 황재형, 안창홍, 김창열, 최상철, 이진우의 작품으로 꾸려졌다. 최상철의 회화는 붓이나 팔레트, 이젤 같은 전통적 화구를 멀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이들로는 학습된 것들에서 탈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물> 연작에서 캔버스를 제외한 모든 도구는 원시 수렵시대에나 유용할 듯한 단순함과 중력 정도가 다이다. ‘고독’에서는 오귀원, 김명숙, 홍순명, 김승영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홍순명 작가는 “작업실에 갇혀있다시피 했는데 그게 너무나도 익숙하더라. 작가란 그런 사람들이란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며 웃었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