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Power of Crew Culture①] 서로 다른 영역의 섞임 속, 새로운 시너지 만들어가는 예술가 집단

입력 : 2020.07.06 21:13

[툴보이(TOOLBOY)]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고단한 숙명의 예술가들. 이러한 독자적인 작가 정신은 이들을 일컫는 대명사였다. 그러나 요즈음 생각과 목적이 비슷한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프로젝트 팀, 아티스트 컬렉티브, 크리에이티브 그룹 등 다양하게 일컬어지는 예술가 집단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소위 ‘크루 문화’라고 명명되는 이러한 흐름은 과거 힙합 신에서 래퍼들에게 비트를 만들어줄 프로듀서가 필요하고, 무대에서는 완성된 비트를 틀어줄 DJ가 필요하기에, 음악적 취향과 방향성이 잘 어우러지는 몇몇이 모여 하나의 무리를 형성한 것에 빗대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섞임 속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예술가 집단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지난봄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린 전시 ‘Learning Process’. 툴보이가 작품과 공간 기획, 연출을 담당했다. /롯데갤러리
지난봄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린 전시 ‘Learning Process’. 툴보이가 작품과 공간 기획, 연출을 담당했다. /롯데갤러리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와 플랫폼이 융·복합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라이프스타일의 영역 간 경계를 허물며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복합 문화 공간도 더 이상 낯선 경험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최근 예술계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특정 장르와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 집단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물론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수의 ‘스타’를 앞세우고 다수가 익명으로 존재하는 공동 창작에 가까웠던 과거의 시도와는 달리, 오늘날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과 전문성을 드러내고 키우는 동시에 서로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분야나 장르의 경계 없이 집단의 능력을 창조해내는 일종의 ‘네트워크’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은 마치 자유롭게 뭉쳤다 흩어지기도 하는 재즈 밴드나 힙합 크루처럼 개인의 작업이 서로의 여백이 되어주고, 공백을 채워주기도 하는 협업 활동을 선보인다. 아예 팀을 결성하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헤쳐 모여’ 식으로 서로의 요구가 맞을 때만 뭉쳤다가 각자 할 일을 하기도 한다. 
 
지난봄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린 전시 ‘Learning Process’. 툴보이가 작품과 공간 기획, 연출을 담당했다. /롯데갤러리
지난봄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린 전시 ‘Learning Process’. 툴보이가 작품과 공간 기획, 연출을 담당했다. /롯데갤러리
 
가령 아크로바틱 코스모스는 손현선, 윤지영, 장서영, 3명의 작가가 협업할 때 일시적으로 구성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입체를 다루는 윤지영과 비디오 작업을 주로 하는 장서영,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손현선은 각기 다른 매체로 작업하다가, 특정 공감의 지점에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또 국내외 팬덤을 갖춘 인기 그룹 혁오 밴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유명한 다다이즘 클럽은 포토그래퍼와 비디오그래퍼, 디자이너로 구성된 집단으로, 이들 역시 각자 전문화된 영역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자신들만의 스트리트 감성을 담은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가 집단의 형태를 넘어, 서로 다른 크리에이터가 모여 회사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공간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가 힘을 합쳐 결성한 텍스처 온 텍스처의 경우, 인테리어부터 소규모 브랜딩, 사진 작업, 출판·전시, 아트 숍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행보를 보여준다. 이 그룹은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가 지난해 ‘가오픈’ 식으로 문을 열었을 때 개관전의 주인공이기도 했는데, 당시 주말에 수천 명이 찾을 정도로 성공적인 ‘모객’에 공헌한 주 원동력이었다.
 
 
혹자는 창의성이란 곧 ‘재결합’이라고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오래된 생각과 만나 우연처럼, 필연처럼 참신한 통찰력을 낳기 마련이다. 개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하되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여러 분야를 융합적으로 엮어내는 식으로 영역을 만들고 확장해나가는 크리에이터 그룹이 다양한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요즘 예술계의 젊은 풍경은 ‘인간’에 초점을 맞춘 협업적 가치가 엿보여 흐뭇한 면이 있다. 유연한 방식의 공동 창작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해도 미리 ‘수명’을 걱정하기에는 시도만으로도 가치 있어 보인다. 배경이 서로 다른 작가들 간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창작물을 선보이는 4개의 예술가 그룹을 소개한다. 
 
툴보이 메인 멤버. 왼쪽부터 그래피티·음악 프로듀서 아토(Ato), 가구·인테리어 디자이너 케이웨일(K.Whale), 미디어 영상감독 세르지오(Sergio) /서울산업진흥원
툴보이 메인 멤버. 왼쪽부터 그래피티·음악 프로듀서 아토(Ato), 가구·인테리어 디자이너 케이웨일(K.Whale), 미디어 영상감독 세르지오(Sergio) /서울산업진흥원
 
흔히 순수예술로 일컬어지는 ‘아트(art)’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기술’에 가까운 어원을 지니고 있다. 라틴어 아르스(ars)와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인문학적 지식에 기반한 전반적인 예술 분야와 그것을 구현하는 숙련된 기술을 아우르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가 뒷받침되는 ‘수공예’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도 했다. 단순히 2차원의 시각예술뿐 아니라 작품을 담은 공간을 디자인하고 브랜딩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저마다 주 무기를 지닌 인재들의 만남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장르의 경계를 사뿐히 넘나들고 프로젝트마다 자유롭게 인원과 구성 등을 달리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툴보이(Tooboy)가 창출해내는 시너지는 절로 오감을 즐겁게 하기에 더 눈길이 간다.
 
노들섬에서 열린 스트리트 컬쳐 플랫폼 올데이아웃 WTFC 전시(2019). 툴보이가 공간 기획·연출을 맡았다. /WTFM
노들섬에서 열린 스트리트 컬쳐 플랫폼 올데이아웃 WTFC 전시(2019). 툴보이가 공간 기획·연출을 맡았다. /WTFM
 
미술과 디자인, 인테리어와 설치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가 집단’
 
재기 발랄하고 직관적인 명칭부터 이목을 절로 끄는 툴보이. 2년 전쯤 미술과 디자인, 가구와 인테리어, 미디어와 공연 등 각 분야 전문가가 결성한 이 크리에이티브 그룹은 전시와 페스티벌 같은 공간형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품 디자인부터 가구·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툴보이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교란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 제23특수부대 ‘고스트 아미(Ghost Army)’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다수의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무선통신사, 엔지니어 등으로 구성된 고스트 아미는 기발한 특수 효과로 독일군을 교란한 일종의 연출가·예술가 부대였다. 각자의 전문 기술을 활용한 공동 교란 작전을 수행했던 것이다.
 
아토, ‘Toolboy Lights’(2020), neon, 100x60cm /롯데갤러리
아토, ‘Toolboy Lights’(2020), neon, 100x60cm /롯데갤러리
 
이와 비슷하게 가구·인테리어 디자이너 케이웨일(K.Whale)과 그래피티·음악 프로듀서 아토(Ato), 미디어 아트·프로젝션 맵핑을 담당하는 세르지오(Sergio)를 중심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전문 페인터, 건축가, 목공 장인, 시대별 희귀 아이템을 수집하는 아키비스트, 천재 해커, 프로그래머 등 출신과 배경이 다양한 멤버 수십 명이 모여 있는 툴보이는 평소에는 각자의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프로젝트가 생기면 일시적으로 모여 공동 작업을 한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조직화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고 새로운 사람들과 연대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물 같은 형태의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는 결코 모든 걸 잘해낼 수 없거든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향한 도전
 
소유보다는 경험이 중요해진 문화 소비 트렌드 속에서 ‘아트’는 가장 크게 각광받는 체험 경제의 총아 중 하나다. 더욱이 다양한 인접 장르 간 경계와 역할이 점차 희미해지고, 순수 미술과 상업 문화, 서브컬처 등의 위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니 아트의 보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툴보이는 아트와 디자인, 갤러리와 스트리트 등의 미완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특정한 장르와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서로 다른 분야와의 섞임에서 오는 새로운 긴장감과 시너지를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담는 것을 작업의 모토로 삼고 있다.
 
툴보이가 공간 기획, 디자인, 시공을 담당한 이태원의 겸상 더 소셜베이스(2018) /WTFM
툴보이가 공간 기획, 디자인, 시공을 담당한 이태원의 겸상 더 소셜베이스(2018) /WTFM
 
지난해 5월 아트 페어인 아트부산이 열린 기간에는 영화의전당에서 인상적인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의자와 매트리스, 조명, 토이 등 일상의 가구와 오브제가 해체·재조합되고 다채로운 그래피티로 덮인 풍경을 통해 본래의 쓰임과 형태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해방의 정서를 보여줬다(당시에는 툴보이가 속한 에이전시 이름인 ‘WTFM(What the Fun Man)’으로 참여). 이들은 하얀색 입방체(white cube)를 무대로 펼쳐진 전형적인 갤러리 전시부터 소셜 커뮤니티 공간이나 패션 브랜드 매장을 비롯한 여타 상업 시설의 공간을 기획하고 브랜딩할 때도 즉흥적이면서도 강렬한 드로잉과 그래피티, 독특한 설치 작업 등을 통해 툴보이만의 낭만적 아이덴티티의 흔적을 남긴다.
 
국내외 갤러리와 미술관의 울타리를 넘어 다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FnC 코오롱, 뉴발란스, NBA, VANS, KREAM 등)을 비롯해 어반 스트리트 컬쳐 컨벤션(WTFC, 2019) 등 여러 방면에서 신선한 이슈를 만들어가고 있는 툴보이들의 활약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툴보이의 경기 여주 작업실 밖 풍경. 그래피티로 뒤덮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툴보이의 예술적 재료가 되는 작은 오브제부터 가구, 오토바이, 대형 물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재와 도구가 들어 있다. /서울산업진흥원
툴보이의 경기 여주 작업실 밖 풍경. 그래피티로 뒤덮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툴보이의 예술적 재료가 되는 작은 오브제부터 가구, 오토바이, 대형 물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재와 도구가 들어 있다. /서울산업진흥원
 
본 기사는 아트조선x스타일조선 공동 기획 일환으로, <스타일조선일보> 2020년 7월호(207호)에서 발췌했습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