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그림을 그려봅시다?”

입력 : 2020.07.03 16:21

[인세인박]
한국 추상화 작품 ‘손쉽게’ 모방해 미술시장 희화화
‘그림을 그립시다’展, 8월 15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돈이 되는 그림을 그려봅시다.” 붓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저 선을 긋는 게 전부다. 캔버스는 그 선들로 채워지고 그렇게 돈이 되는 그림이 완성됐다.
 
Joy of Painting, 2020, Single-channel video, 6m49s /아라리오갤러리
Joy of Painting, 2020, Single-channel video, 6m49s /아라리오갤러리
 
인세인박(Insane Park·40)이 이우환 <선으로부터>를 모방하며 한국 추상화를 ‘손쉽게’ 그려 작가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영상 <Joy of Painting>을 공개했다. ‘참 쉽죠?’로 잘 알려진 미국 화가 밥 로스(Bob Ross)의 유명한 TV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를 차용해 미술 작품의 시장 가치 형성 과정을 희화화한 것.
 
영상 속 밥 로스는 공사장에 널려있을 법한 돌을 가져와 전시장에만 두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표절 시비가 일 때는 ‘오마주’와 ‘패러디’라고 둘러대면 된다고도 설명한다. ‘돈이 되는 그림’을 그려보자며 캔버스에 선을 그려 넣는 게 전부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즐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림을 그릴 땐 행복한 게 전부라면서. 이는 작가가 현대 미술 시장과 자본주의 체제 속 예술의 역할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Joy of Painting, 2020, Oil on canvas, 50x40cm /아라리오갤러리
Joy of Painting, 2020, Oil on canvas, 50x40cm /아라리오갤러리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총괄 디렉터는 “사실 처음에 영상 보고 걱정이 들더라. 이걸 전시장에 걸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해봤을 내용이지 않나. 자본주의와 미술시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했다. 
 
인세인박이 흥미로운 신작으로 꾸린 개인전을 열었다. 밥 로스의 수업을 차용한 영상과 그의 수업을 모방하며 만들어진 작품들이 걸린 전시장에는 미술 창작과 미술시장의 메커니즘을 반추할 수 있다.
 
인세인박 개인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인세인박 개인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그의 이번 개인전은 다른 제목과 작업으로 구성된 아예 다른 두 개의 형태로 동시 개최된다. 현 세대가 겪고 있는 문화적 경험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그려내기 위해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와 ‘그림을 그립시다’를 선보인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에는 인터넷에 부유하는 밈(Meme), 이른바 ‘짤’을 미술의 맥락으로 가지고 들어 온 영상 신작을 내걸었다. 그는 밈과 짤이 맥락과는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복제되고 기하급수적으로 배포되며 사회적 경향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포착, 이들 짤막한 영상 작품을 통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이모티콘이나 움짤로 담아내는 현세대의 소통방식을 보여준다.
 
I have no Idea because I have no Idea, 2020, single channel video, 25s /아라리오갤러리
I have no Idea because I have no Idea, 2020, single channel video, 25s /아라리오갤러리
 
지나간 시대의 팝컬처와 넷상의 언어를 미술의 장치로 삼아 참조된 의미를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GIF나 짤로 흩어져 있는 이 의미의 조각들은 과거를 모방하고 복제함으로써 상황을 풍자하는 현세대의 납작한 표현방식과 중첩되어 우리 사회가 당면해 있는 모순과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 숨어있는 노래, 이미지, 문구를 좌표로 삼아 재미와 혐오, 염원과 욕망, 상품과 쓰레기, 예술과 밈이 공존하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이를 순간적으로 소비해 버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인세인박은 미디어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시·지각간의 상관관계를 탐구해왔다. 당돌하고 도발적인 그의 영상 작업이 때론 유튜브나 Vimeo에서 차단되고 삭제 당하는 등 문제적 작가이기도 하다. 8월 15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Ghost, 2020,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3m /아라리오갤러리
Ghost, 2020,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3m /아라리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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