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오류를 모아 화폭에… 디지털 피부를 입은 회화

입력 : 2020.05.29 18:31

[박종규]
암호화된 ‘노이즈(오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
개인전 ‘~Kreuzen(크루젠)’, 6월 11일부터 부산 데이트갤러리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회화, 영상,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박종규(54)가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올해 첫 전시를 부산에서 가진다. 6월 11일부터 7월 25일까지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Kreuzen(크루젠)’에서 회화와 영상 신작을 다수 선보인다.
 
박종규는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에서 추출한 점과 선을 주요 모티프로 코드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점과 선을 코드화해 화면에 드러나는 것을 작가는 ‘노이즈’라고 칭하는데, 이는 현대음악에서 ‘배제 혹은 제외된 것’을 뜻함과 동시에 ‘소음’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나는 회화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로 여겨지던 노이즈를 따로 모아서 화폭에 담는다. 노이즈가 순전히 부정적인 기능만 가진 건 아니다. 이를테면, 음향학에서 취급되는 대표적인 노이즈인 디스토션(Distortion)은 전기증폭 장치에서 입력과 출력의 펄스가 맞지 않아 소리가 찌그러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디스토션은 록 음악에서 그 파열음이 가진 카타르시스로 인해 일렉트릭 기타가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효과 중 하나로 꼽힌다.”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그의 작업에서 노이즈는 주류 사회나 예술에서 제외된 것을 상징하며, 옳고 그름, 흑과 백 등 이항 대립적 틀을 해체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들 배제된 것 안에서 미술적 가치를 사고하며 노이즈를 수용하고 오류를 받아들이며, 시공간에 대한 고찰은 곧 모니터 위에서 디지털 세계로까지 이어진다. 캔버스에서 드로잉을 지우개로 지워내며 사라지는 그 과정에서 박종규는 노이즈, 혹은 이 오류라는 개념을 픽셀의 다양한 조합으로 옮겨낸다.
 
픽셀의 시각적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얻어 0차원(점)과 1차원(선)의 패턴을 모티브로 해, 컴퓨터상의 노이즈가 암호화된 이미지를 출력한다. 그리고 이를 캔버스에 붙인 후 부분 부분을 뜯어내 그 위에 전통적인 색채를 더해 화면을 완성한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추상회화이면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순수회화로도 읽을 수 있다. 디지털화된 사회의 체계를 분석하고 그 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시각화해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회화는 아트바젤 홍콩 인사이트 섹터, 뉴욕 아모리쇼 포커스 섹션 등을 통해 국제 미술계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Kreuzen, 162.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데이트갤러리
 
전시타이틀 ‘크루젠(Kreuzen)’은 ‘순항하다’라는 뜻의 독일어로, 디지털화돼 가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거대한 데이터 홍수에서 점과 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 또한 그의 작업이 데이터베이스가 돼 자족적 생명력을 지님으로써, 노이즈의 파도 속에도 순항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 오프닝은 6월 12일 오후 5시다.
 
맨 위로